미안하지만 삶의 본질은 허무다. 그 허무를 붙들기 위해 사람들은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고 여행을 하는 것이다. 제 아무리 많은 재물을 가진 사람도 잠자는 공간은 두 평 남짓이고 하루 세끼 먹는다.

어쩌면 너무 많이 가진 것 때문에 자유롭지 못할지도 모른다. 물론 가고 싶은 곳을 가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사고 싶은 것을 마음껏 살수는 있겠지만, 밀려드는 허무 앞에서는 무용지물일 뿐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인생인지라 더욱 그렇다. 오늘 하룻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는가. 그래서 인간은 불안과 동거하며 살 수밖에 없는 태생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그런 허무가 결국은 문화와 예술를 창조하는 밑바탕이 되었다는 것.  

까미유 피사로의 작품 ‘옷 벗은 여자’를 보면 삶이 더욱 쓸쓸하다는 것이 단박에 느껴진다. 목욕을 마친 여인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창밖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마치 누군가 오기로 했는데 아직 오지 않고 있다는 듯...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 누드야 말로 인간의 실존을 한 마디로 보여 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발가벗은 여인은 결국 빈 몸으로 떠나야 하는 인생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리고 뭔가를 간절히 기다리기는 하지만 도대체 그렇게 기다리는 게 뭔지 모르는 것, 이게 인생이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맹목적인 기다림에 속에서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에 바람처럼 불현듯 사라지고 마는 허무한 우리네 삶을 묘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치 ‘고도’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처럼.  

피사로는 오랫동안 재정적인 어려움 가운데서도 그림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으며, 심한 눈병에도 불구하고 후기에 가장 많은 작품을 만들어냈다. 그는 말년에 풍경을 주로 그렸는데 그의 그림은 극적이지 않으면서도 형태들은 뚜렷하며 색채는 강렬했다. 발가벗은 저 여인이 이렇게 묻고 있다. "지금 당신이 그처럼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홍봉기 기자  lovein29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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