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나이 듦에 감사하면 황혼의 삶도 아름답다 
  • 광양경제신문
  • 승인 2021.02.16 20:26
  • 댓글 0

 

늙어 가는 길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처음 가는 길이다. 본디 인생 자체가 무엇 하나 처음 아닌 것은 없지만 늙어 가는 이 길은 몸과 마음도 같지 않고 방향 감각도 서툴기만 하다. 가면서도 이 길이 맞는지 어리둥절할 때가 많다. 어릴 적 처음 길은 호기심이 있었고, 젊어서의 처음 길은 무서울 게 없었는데 처음 늙어 가는 이 길은 어렵게 느껴진다. 하루를 지난다는 것은 그만큼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뜻이다.

어느 시인은 ‘예습도 복습도 없는 단 한 번의 인생의 길이라’고 말했다. 나의 목숨 길이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살고 있다. 남은 앞길이 짧다는 걸 알기에 한발 한발 더디게 황혼길을 걸어간다. 
 

 높다고 해서 반드시 명산이 아니듯 나이가 많다고 해서 반드시 어른이 아니다. 가려서 볼 줄 알고, 새겨서 들을 줄 아는 세월이 일깨워 준 연륜의 지혜로 판단이 그르지 않는 사람이 어른일 터이다. 성숙이라 함은 높임이 아니라 낮춤이라는 것을, 채움이 아니라 비움이라는 것을, 스스로 넓어지고 깊어질 줄 아는 사람이 어른이다. 삶의 교훈이 거름처럼 쌓여가니 나이를 더 하여도 인생의 무상함을 서글퍼 하기보다 깨닫고 또 깨달아야 한다.

마음은 비우고 속은 채워서 건강한 생각으로 살아갈 때 늙어가는 길도 행복할 수 있으리라. 지금은 70세 노인을 신중년이라 부른다. 80세 노인은 초로의 장년이라 부른다. 노년의 매력은 잘 생긴 외모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유머 감각과 세련미, 상대를 편안하게 하는 기술 등 다른 사람의 호감을 살 수 있도록 하는 이런 태도나 기술은 나이 듦의 지혜와 경륜이다. 
 

 영국의 캐더린 하킴 박사는 ‘매력자본‘을 갖춘 노신사가 될 수 있는 필요조건을 말했다. “자신의 마음 마당을 항상 사랑으로 가득 채우고 향유 하라. 삶을 관조하면 그대와 나 모두가 존귀한 존재임을 깨닫게 되고 서로를 존중하게 되리라”.

이런 마음 바탕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긍정적 낙천가가 된다. 지금 이 자리에서 만족할 수 있다면 애써 더 많은 것을 찾지 않아도 충분하다. 때로는 없으면 없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사는 것이 참 좋을 때가 있다. 잔글자를 보기 위해 돋보기를 써야하고, 귀가 어두워 보청기의 도움을 받지만, 조금 없이 살고, 부족하게 살고, 불편하게 사는 것이 미덕일 수 있다.

바람이 말한다, 바람 같은 존재이니 가볍게 살라고. 구름이 말한다, 구름 같은 인생이니 비우고 살라고. 물이 말한다, 물 같은 삶이니 물 흐르듯 살라고. 땅이 말한다,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니 내려놓고 살라고.
   

 2021년 새해도 벌써 첫 달이 지났다. 어제까지는 역사이고 미래는 미스터리일 뿐, 오늘을 살아감은 신의 선물이다. 아침이면 태양을 볼 수 있고, 내 발로 걸어 다니며, 저녁이면 별을 볼 수 있고, 기쁨과 슬픔, 사랑을 느낄 수 있으며, 남의 아픔을 같이 아파해 줄 수 있는 가슴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으니 행복하다. 오늘 여기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웃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그 삶은 행복이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present)를 선물(present)이라 부른다. 가난해도 비굴하지 않으며, 억울한 일 당해도 원통하지 않으며 오늘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노년은 행복하다. 새해를 선물로 주심을 감사할 때 오늘 나의 삶이 기적인데 날마다의 기적을 보면서도 감탄사가 나오지 않은 것은 그 영혼이 메말랐기 때문이다. 하여 내 안에 잠자는 나를 깨워야 한다. 가슴이 뛰는 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필리핀에서 선교하던 필자는 80세에 댕기열병에 감염되어 병원에 입원했다. 세상을 떠날 때가 다가온 것이라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삼 일간 사경을 헤매이다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살아남았다. 그때 나는 죽었고 다시 소생함을 받았다. 어떤 사람은 청년 시절에 요절했고, 어떤 사람은 장년의 때에 떠났는데 나는 하늘이 준 천수를 누리며 살아있으니 감사할 것밖에 없다.

‘나는 날마다 죽는다’는 바오로의 죽음과 부활을 경험한다. 하루하루를 죽었다가 다시 삶을 이어오며 좋은 글을 읽으니 몸은 늙어도 영혼은 늙지 않아 글을 쓸 수 있음에 감사한다. 심신이 쇠약해진 상태에서 내가 살아 있음을 알리는 유일한 통로로서의 글은 나를 위한 것이지만 이게 상상 이상의 행복을 맛보게 한다.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진리는 ‘세상에서 가장 큰 승리는 살아남는 것’이다. 나이 듦에 감사하니 늙어도 행복하고 아름다운 황혼이 아닐까?
 
 

광양경제신문  webmaster@genews.co.kr

<저작권자 © 광양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양경제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