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것은 눈에 남지만 오래된 것은 마음에 남는다

▲도촌 군두리 마을 전경

지난 22일, 봄비 같은 보드라운 비가 오전에 잠시 내렸었다.
질지도 마르지도 않은 길 위를 사복사복 걷는 것은 여유와 낭만이라는 말로 바꿀 수 있겠지 싶다.
엊그제 눈이 와서 출근길 대란이 벌어졌다는 사실은 벌써 까마득한 이야기가 되어버린 채 어느덧 봄 마중을 나가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문득 태인동을 한 바퀴 돌고 싶어졌다.
자연마을보다 산업단지 면적이 더 넓은 곳. 
김 양식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주민들은 1980년대 초 제철소 건설로 삶의 터전을 내어주어야 했다. 그래서 태인동은 광양제철소의 역사와 함께하는 동네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아직도 김 양식을 하며 살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어른들이 계신다. 고달픈 삶도 잊지 못할 추억이 되나 보다.
낡은 아파트, 오래된 식당 등등 30여년이 훌쩍 넘는 세월 속에 모든 ‘새것’들은 ‘낡은 것’이 되었고 태인동은 그저 ‘오염된 공기와 낙후된 곳’이라는 왠지 ‘소외된’ 곳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곳이다.
그래서 오래되어 낡고 낡은 한 아파트 담장에 서툴게 그려진 벽화들이 주민들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있는 것 같은지도 모르겠다.  
김 양식을 생업으로 삼았던 흔적도 골목길 벽화로 살아났다. 태인동에 탯줄을 묻은 어떤 이가 그 벽화 속 그림들은 당시 사진을 그대로 재현해서 그린 것이라고 말해준다.
태인동이 태생지였거나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 벽화를 보면서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옛날을 추억하고 또 사진 속에서 낯익은 얼굴들을 보고 반가워한다. 그 사진 속에는 엄마, 고모, 삼촌이 젊은 모습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저 무심히 지나다닐 때는 느끼지 못했던 숨은 이야기와 진한 향수가 벽화에 담겨있어 좋다. 이순신 장군이 잠시 주둔했다고 알려진 군두리, 사적 자료가 없어 더 확실한 내용을 전달할 수 없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사복 사복 걷다보니 ‘담안샘’이 나온다. ‘담안’에 있다고 해서 ‘담안샘’이라고 불렀다 한다.
한 때 태인동 사람들의 생명수가 되었던 샘이다. 담안 샘에서 숨을 고르고, 태인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김 시식지를 가본다.
김 시식지는 1987년 6월 1일에 전라남도 기념물 제113호로 지정됐다.
우리나라에서 김 양식을 가장 먼저 시작했던 곳이 완도나 대천 등 다른 김 생산지가 아닌 태인동이었음을 김 시식지가 말해주고 있다. 조선 인조 18년(1640년)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김을 양식한 김여익(1606~1660)공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김 시식지는 김의 유래와 역사, 제조과정 등을 볼 수 있는 역사관도 있어 아이들과 함께 가 봐도 좋을 곳이다.
태인1구에서 3구까지 느릿느릿 태인동을 걷다보니 숨이 차오른다. 아직 분양이 덜됐다는 명당산단을 바라보며 태인동 걷기를 멈추기로 한다. 
에너지가 남는다면 삼봉산에 올라 30년 넘도록 ‘산업의 쌀’을 만드느라 고생한 제철소의 장엄한 설비들과 저 멀리 남해까지 조망할 수 있는 쾌감도 즐겨보길 권한다. 
시청 앞 광장에 핀 이른 매화가 봄이 멀지 않았음을 일러준다.
오래되고 낡은 것은 왠지 애틋하다. 
봄이 와서 따스한 봄 햇살이 등을 떠밀면 사복사복 태인동으로 가보라고 말하고 싶다. 
 

▲장내마을 담안샘

▲궁기마을 김 시식지

▲도촌마을 김 양식 벽화

김영신 기자  ge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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