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쇠고 나서 집을 리모델링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내가 보기에는 크게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한 공간에 너무 오래 머물다 보면 무미건조해지는 것 같아 아내와 깊이 상의한 끝에 리모델링을 하기로 합의를 봤다.

특히 아침에 출근해 저녁에 들어가는 직장인들에게 있어서는 굳이 리모델링을 해야 하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겠지만, 매일 집에서 생활하는 주부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때가 되면 공간도 조금씩 변화를 줘야 마음도 새로워지는 법. 공간배경이 달라지면 생각도 달라지고 분위기도 쇄신되는 등 상당히 좋은 효과를  불러 올 수 있기 때문에 권태로운 부부생활에도 작은 활력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리모델링을 하면서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은 구석구석 너무 많은 물건들이 처박혀 있다는 것이다. 어떤 물건은 겨우 한 번밖에 쓰지 않은 것도 있다. 한 때는 소비가 미덕이라는 말이 유행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환경문제를 생각해서라도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면 구매하지 않아야 하는데도 그게 이녁 마음대로 잘 되지 않는다. 물론 경제가 어느 정도 돌아가기 위해서는 소비를 하지 않을 수는 없는 문제이기는 하다. 참으로 현대인들의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간혹 무소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나처럼 평범하게 살아가는 소시민들은 무소유를 실천한다는 게 쉽지 않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최소한의 것만 소유하는 방법 밖에 없다. 사실 무언가를 많이 소유한다는 것은 그 만큼 그 소유에 마음을 빼앗긴다는 말과 같다. 비싼 고급 차를 사거나 명품을 소유하게 되면 온통 신경이 그곳으로 쏠릴 수밖에 없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이치다. 

초등학교 때의 경험이다. 설날 어머니께서 시골 장터에서 새 옷과 새 운동화를 사주신 적이 있다. 나는 새 옷과 새 운동화를 자랑하기 위해 일부러 골목길을 돌아다녔다. 그런데 문제는 내 걸음걸이가 너무 어색했다는 사실이다. 혹시 운동화와 옷이 더러워질까 봐 무척이나 조심했던 것인데, 결국 그 물건이 내 몸을 구속하고 내 정신을 지배했던 것이다. 아마  누구나 한 번씩 이런 경험을 해 봤을 것이다. 

나는 일단 물건들을 처분하기 전에 이 물건이 필요하다 싶은 사람들을 먼저 떠올렸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 물건이 꼭 필요한가를 물은 후 직접 물건을 배송해주었다. 10년 넘게 우리집 거실에 깔려 있던 카펫은 음악을 하는 친구에게 주었고, 나머지 자잘한 것들도 필요한 사람들에게 모두 나눠주었다. 일단 그렇게 하고 났더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집이라는 공간도 이러할 찐데 사람의 마음 또한 그러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살다보면 마음 역시 얼마나 많을 것들을 쌓아두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심지어 내게 상처 준 사람들을 지우거나 용서하지 못한 채 그렇게 외진 구석에 처박아 두곤 스스로 괴로워 할 때도 참으로 많다. 마음도 그때그때 분리수거를 해야 몸과 정신이 건강해지는데 말이다. 

재밌는 것은 영어로 ‘암(癌)’을 캔서(cancer)라 하고 ‘지우다’를 캔슬(cancel)이라고 한다는 것. 아무리 눈여겨봐도 겨우 스펠링 하나 차이다. 어쩌면 슬픔과 아픔을 제때 지우지 못하면 결국 우리 육신을 병들게 하는 암이 된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개조시키려는 ‘너모델링’ 보다는 매일 내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고 반성하는 ‘나모델링’을 먼저 한다면 사람의 관계는 물론 정신 건강에도 훨씬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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