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보다는 덜하지만 요즘도 그리스로마 신화는 화가들에게 상상의 보물창고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화가들은 그리스로마 신화를 읽고 자기만의 상상으로 아름다운 작품을 탄생시키곤 한다. 같은 이야기도 화가의 미적 취향에 따라 천차만별임을 알 수 있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화가는 자신이 그리고 싶은 것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처녀 ‘다나에’도 마찬가지다. 클림트를 비롯해 그동안 많은 화가들이 다나에를 묘사했지만 하나같이 제각각임을 알 수 있다. 다나에는 아르고스의 왕 아크리시우스와 에우리디케(오르페우스의 연인 에우리디케와 동명이인)의 딸이며 페르세우스의 어머니다.

딸은 있으나 아들이 없어 걱정을 하던 아크리시우스 왕이 예언자를 찾아갔는데, 자신이 땅 끝에서 자신의 외손자에게 살해당할 것이라는 신탁을 듣게 된다. 이에  겁이 난 왕은 아직 시집도 가지 않은 딸이 아이를 낳지 못하도록 청동 탑에 가두고 만다.

그러나 우연히 다나에를 발견한 제우스가 금빛가루 비(雨)로 모습을 바꾸어 방으로 스며든 뒤 다나에를 임신시켰고 다나에는 곧 영웅 페르세우스를 낳게 된다. 어떤 형태로든지 남녀 간의 애정은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금빛가루는 아마 남성의 정액을 상징할지 모른다.  

우리는 남녀 간의 사랑을 에로스로 부르지만, 초기그리스도교는 신의 사랑을 강조하기 위해 이 단어를 쓰기도 했다. 남녀 사랑에 의해 아이가 탄생하듯 신의 사랑이 우주를 탄생시켰다는 것. 흔히 기독교는 아가페 사랑을 가장 숭고한 사랑으로 여기고 있지만, 에로스 없는 아가페는 그저 공허할 뿐이다.

결국 에로스는 우리를 존재하게 만들고 아가페는 그 존재를 완성에 이르게 하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남녀 간의 뜨거운 사랑은 아무리 높은 성벽도 아무리 견고한 성벽도 모두 뚫고 들어가는 힘이 있다.  

마뷔즈가 그린 다나에는  그 사실을 잘 함축해 보여 주고 있다.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기둥 모양의 건축과 폐쇄적인 액자 모양은 마치 감옥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기둥 사이로 보이는 또 다른 건축물은 지금 이 장면이 신화가 아닌  현실 속의 이야기인 것처럼 믿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녀가 입고 있는 옷도 아주 세련되어 보인다. 반나체의 모습을 한 채 한 쪽 유방을 드러낸 채 금빛 가루를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은 에로스의 힘이 얼마나 강하고 집요한지 잘 보여주고 있다하겠다.   

홍봉기 기자  lovein29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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