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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콩트 7 그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살고 있을까춘삼이가 애덕이를 짚더미 위에... 포도송이처럼 달린 까만 젖꼭지를 빨아대며...
  • 광양경제신문
  • 승인 2020.07.06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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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콩트 7 구라와 웅변

구라(口羅)는 '거짓말'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요즘 흔히 쓰이고 있는데 어원이 일본이라는 설이 있지만 확실치는 않다.

여하튼 한자대로 굳이 풀이하자면 말을 비단같이 매끄럽게 하여 상대방을 현혹한다는 뜻으로 보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물론 방송인으로 '구라'를 예명으로 쓰는 사람도 있어 요즘에는 구라의 의미가 좀 허황되고 개그적인 요소까지 가미되는 '썰' 정도로 해석되는 듯하다.

하지만 해방 이후부터 대한민국에 '3대 구라' '6대 구라'로 일컬어지는 전설적인 분들이 활동하고 있다는 것까지 알고 있는 분들은 드물다.

대한민국 구라 계보의 원조 3대 거두로는 백기완, 황석영, 방동규 선생이 아직도 왕성하게 활동 중인데, 일설에 의하면 어느 날 한량들이 대한민국 3대 구라에 이어령, 유홍준, 도올 김용옥 선생도 끼워주어 '구라계'를 무협계와 마찬가지로 '6대 문파'로 해야 한다는 썰을 풀어대고 고 있었다 한다.

그때 마침 원조 구라 중 한 명인 배추 방동규 선생이 쓱 들어 오더니 "갸들은 교육방송이야"라고 정리를 했다 하는데 그 이후 원조 구라 세 명에
'교육방송파'가 가세하여 대한민국 구라계에 6대 천황의 계보를 완성하게 되었다는 후문.

개인들 끼리 사석에서 나누는 그럴듯한 논리의 입담은 ‘구라’라고 하지만, 정치인들에게는 대중에게 어필하기 위해서 호소력 있고 설득력 있는 논조의 화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우리는 그들의 구라만큼은 절대 ‘구라’라 하지 않고 연설 또는 웅변이라는 비교적 고급스러운 용어를 사용하여 그 위상을 높여주는 경향이 있다.

각설하고
오늘 이어지는 인문 이야기는
뛰어난 구라와 웅변, 불굴의 의지를 바탕으로 보잘것없는 신분이었음에도 한나라의 지도자가 되어 세상을 바꾸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또한 출신지와 흙수저였던 출신 성분 때문에 차별을 당하거나 설움을 겪다가 우여곡절 끝에 권력의 정점에 서게 되고 세상을 뒤흔들었던 흥미로운 이력의 공통분모를 지니고 사람들이다.

어디든 인문적 고품격 대담이 벌어지는 자리에서 흙수저 출신들의 국적 세탁 썰을 가지고 참전하면 꿀리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는 바이니 다음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두면 유익하리라.

 

오늘도 마찬가지로 내 이야기가 늘 그렇듯, 여기저기에서 주어온 인문 썰이 끝나면 성인 콩트가 등장하는데 이는 땅콩 껍데기 속 들어있는 고소한 알맹이와 같은 것이니 성질 급한 분들은 스크롤을 내려 이 부분을 먼저 읽기를 권한다.


오늘의 썰: 국적을 바꾸어 권력의 정점에 오른 구라쟁이들

1. 나폴레옹

 나폴레옹은 1769년 8월 15일 지중해 위에 있는 프랑스령 코르시카에서 태어났다.
코르시카는 1768년까지는 이탈리아 북부해안에 있던 제노바 공화국의 소유였으나, 제노바의 학정에 항거하여 벌였던 코르시카 독립운동이 실패로 끝나면서 이후에는 독립운동 과정에 개입했던 프랑스의 영토가 되었다.

이때 이탈리아계였던 나폴레옹의 가문은 프랑스로 전향했다고 하는데
굳이 억지 가상의 비유를 하자면 코르시카는 우리나라가 점령하여 영토로 만든 대마도쯤 되는 거고 나폴레옹의 아버지는 일본 사람으로서 한국에 전향한 대마도의 토호 정도로 보면 이해가 쉬울 듯하다.

그런 형편이다 보니 프랑스혁명 이전 대단한 가문의 자제들이 모여 수학 중이던 사관학교에서 나폴레옹은 우스꽝스러운 코르시카섬 출신의 사투리를 쓰는 촌놈으로 차별받고 놀림당하였으며 동기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당시 코르시카어는 프랑스어보다는 이탈리아어에 더 가깝다고 할 정도로 프랑스 표준어와는 사뭇 달랐다고 하니 정통 프랑스어를 구사하며 선민사상에 찌든 귀족 자제들이 듣보잡 시골 촌놈 나폴레옹을 대놓고 무시하는 것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사관학교 졸업 후에도 한동안 나폴레옹은 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하기 전까지
지배계급의 중심부에 속하지 못하고 당시 체제인 '앙시앵 레짐 (Ancien Régime)'의 상위 주류 세력과는 관계가 먼 비주류였다.

※앙시앙 레짐(ancien régime): 구 체제를 일컫는 말로, 프랑스혁명 이전에 국민의 정당한 자유와 권리를 짓밟았던 일종의 신분 체제였기에 프랑스혁명 때 타도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신분상으로는 비주류였을지언정 초급장교 시절부터 미래를 꿈꾸며 손에 책을 놓지 않을 정도로 자기 계발에 힘썼다 한다.

그런 독서의 힘 때문인지 그가 세상에 남긴 명언과 연설문이 몇 개 남아 전해지고 있으며 그의 포병 장교로서의 뛰어난 능력과 지도력과 비전 그리고 웅변술은 그가 태생적으로 지녔던 출신과 비주류 출신이라는 약점을 극복하고 나중에 스스로 황제가 되는 데 큰 역할을 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나폴레옹은 한때 코르시카 독립을 위해 싸우기로 결심할 만큼 프랑스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에 불타오르던 때가 있었지만, 스스로 황제가 된 후 프랑스를 넘어 유럽 전체를 공포 속에 몰아넣는 침략자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였으니 섬 출신 이탈리아계로 사투리까지 심했던 그가 유럽의 역사를 송두리째 뒤흔들 줄 그 누가 알았을까?

아래는 제1차 이탈리아 원정 당시 밀란(Milan)으로 진격을 개시하기 전(前) 진두에 나타난 나폴레옹이 병사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연설이라 한다.

글로만 읽어도 나폴레옹의 구라에 감동 용기백배 될 듯이 하는 느낌이 드는데 실제 연설을 현장에서 육성으로 들었던 병사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밀란으로! 밀란으로!

병사들이여!
우리는 아페난 산마루에서 바람 같이 몰아쳐 내려와 우리의 길을 막는 자들을 넘어뜨렸다.

이제 오리자(汚利者)의 학정에서 벗어난 피에르몽 지방엔 평화와 밝은 빛이 깃들고 그곳 주민들은 프랑스 국민에게 감사하고 있다.

이제 밀란은 우리의 것이다.

 


보라!
저 롬바르디 들에서 바람이 펄펄 휘날리고 있는 청(靑). 백(白). 홍(紅)의 깃발을!
마르마 공이나 모래나 공주의 그 정치적 운명도 우리 손아귀에 들어있다.
한때 우리를 위협하던 적병도 벌써 우리 발밑에 굴복하였다.

포강이여!
처시이와강이여!
한때는 이탈리아의 견고한 요새(要塞)라던 것들이 이제는 우리의 진격 앞에 헛된 하나의 돌무더기가 되고 말았다.

병사들이여!
우리의 고국을 생각해 보라!
우리의 승리의 소식이 전해지자 동포들은 미칠듯한 환희에 쌓일 것이 아니겠는가?

부모와 처자식들은 또 얼마나 우리 행운을 기뻐할 것인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우리를 아들이나 남편이나 아버지라 부를 것인가 또 얼마나 큰 영광에 쌓여 있을 것인가?

진실로 우리는 위대한 일을 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가 할 일은 태산 같다.
프랑스 사람들은 싸움에 이길 줄은 알아도 그 승리를 이용할 줄 모른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다.

이제 제군은 다시 무기를 잡아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적군을 무찌르고 새로운 월계관을 얻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내란을 조종하는 자가 누구냐?
우리 함선에 불을 질렀던 자가 누구냐?
그자를 전율시키기 위하여 우리는 가자. 때는 왔다.
복수의 채찍을 들 때는 드디어 왔다.

 -중략-


2.히틀러

히틀러는 태생 자체가 독일 시민이 아닌 오스트리아인으로 1912년 독일로 이주한 뒤 독일 시민권을 얻고자 부단히 노력하였지만, 여섯 번이나 실패하였으며 우여곡절 끝에 44세가 되어서야 독일 시민권을 취득한 비주류 이방인 중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독일 국민이 아니었음에도 독일인보다도 더 독일인 다운 범게르만 민족주의를 제창하여 당시 1차 세계 대전의 패배로 경제적으로 엄청난 좌절감을 겪고 있던 민중들에게 정치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급성장할 수 있었다.

당시 독일 기득세력들의 입장에서는 히틀러의 인기와 정치적인 급성장이 부담스러워 그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데 주저할 수밖에 없었지만, 당시 역사의 흐름은 그가 나치 정권의 최고 지도자에 오르기 불과 1년 전인 1932년 2월 25일 일곱 번 만에 독일 브라운슈바이크시로부터 독일 시민권을 얻게 해주었고,

1933년 선거를 통해 압도적으로 승리하여 독일 총리가 되었으며,
1934년에는 독일 대통령과 독일 총통을 겸임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되었다.

이후 그는 1945년까지 독일 권력의 정점에 서서 1939년 폴란드 침공을 시작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켜 수천만의 인명을 희생시켰고 600만 명의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원흉이 되었다.

오스트리아의 평범한 세관원의 아들로 태어났고 미술대학 입학에 실패한 고졸 출신의 무명화가였으며 독일 시민권조차도 가지지 못 했던 그가 나중에 온 세상을 지옥의 불구덩이 속으로 몰아가리라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동네 소수 정당에 불과했던 나치당을 제1당으로 일으켜 세우고 독일인들을 쥐락펴락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청중을 압도하는 연설과 천부적인 선전능력의 발휘였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사실이다.

또 굳이 가정하여 비유하자면 중국 국적의 고졸 조선족 하나가 우리나라에 굴러들어와 우여곡절 끝에 선거로 대통령까지 되더니 나중에는 전쟁을 일으켜 개전 초기에 일본과 중국 등 인접 국가들을 박살 내는 형국이라고나 할까?

독일 출생의 순수 혈통이 아닌 사람이 독일 순혈주의를 주창하며 유대인들과 슬라브족이 주류인 러시아인들을 자비 없이 학살하였으니 이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 중 하나이다.


성인 콩트 7. 그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살고 있을까.

춘삼이는 나이 차이가 꽤 나는데도 불구하고 아이를 잘 챙겨 데리고 놀았는데 아이도 춘삼이를 외삼촌처럼 든든하고 미덥게 여기며 졸랑졸랑 쫓아다녔다.

낚시를 좋아하던 춘삼이는 가끔 아이를 데리고 성동산을 감싸고 흐르던 석우리 냇가로 붕어를 낚으러 갔다.

눈썰미가 좋았던 춘삼이는 집 뒤란에 지천으로 자라던 맞춤한 길이의 신우대를 골라 자른 후 촛불에 살살 굴려 반듯하게 펴서 낚싯대를 만들었다.

몽당 빗자루에서 쓸만한 수수깡을 골라내어 적당히 길이로 잘라 찌를 만들었고 옷핀을 구부려서 낚시 바늘을 만든 후 무명실에 찌를 달고 작은 돌멩이를 봉돌로 달아 묶어 매면 제법 그럴싸한 낚싯대가 되었다.

마당 한가운데 펌프 우물에 이어진 담장 밑 수채를 막대기로 몇 번만 뒤적이면 미끼로 쓸만한 지렁이를 잡을 수 있었는데 그중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붉은 놈들만을 골라 라면 봉지에 담았다.

낚싯대를 둘러매고 춘삼이 자전거 뒤에 올라타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

춘삼이는 동네를 벗어나 논길로 접어들 때쯤이면 으레 교련복 상의 앞주머니에서 청자 담배를 꺼내 피워 물고는 나훈아의 ‘사랑은 눈물의 씨앗’을 흥얼거렸다.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
먼 훗날 당신이 나를 버리지 않겠지요
서로가 헤어지면 모두가 괴로워서 울 테니까요.'

칠월의 미루나무 그늘 아래 냇가에서는 손바닥만 한 붕어가 곧잘 낚이곤 했는데 한낮 불볕에 숨이 턱턱 막힐 때쯤 되면 춘삼이와 아이는 옷을 홀랑 벗고 물에 들어가 멱을 감았다.

한참을 첨벙대며 놀다 한기가 들어 아이의 입술이 파래지면 춘삼이는 냇갈 옆 콘크리트 수문 위에 아이를 올려놓고 체온이 오를 때까지 해바라기를 시켰다.

춘삼이는 귀에 들어간 물을 털어내느라 한쪽으로 머리를 기울인 채 콩콩 뛰었는데
그럴 때마다 장터 수말 만큼이나 거대한 거시기가 위아래로 털래거리며 달랑거렸다.

나이 차이 때문에 아이가 춘삼이와 공감하며 나눌 수 있었던 대화는 제한이 있었겠지만,
아이는 궁금증이 생기면 이것저것 물었고 춘삼이는 귀찮을 법도 하건만 가끔 아이의 코도 잡아 늘이고 꿀밤을 먹이는 시늉을 해가면서 정성껏 답을 해주었다.

가끔은 홍동지와 김동지가 한동네에서 사랑하는 처자를 두고 서로 다투다가 기러기 나는 가을 달밤에 둘 다 전쟁터로 떠났다는 옛날얘기도 신명 나게 해주었는데 어디서 주워들은 얘기에 춘삼이의 억지스러운 상상력이 가미되어 밑도 끝도 없는 얘기였지만 아이에게 그보다도 더 재미있는 얘기는 이 세상에 없었다.

하지만 아이는 춘삼이와 아줌마가 흘레를 붙는 광경을 보았노라는 얘기는 하지 않았는데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아이가 그것을 말하는 순간 아이와 춘삼이가 가지던 유대와 신뢰가 깨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한낮 땡볕에 아이의 체온은 금방 정상이 되었다.

옷을 다시 입고 다시 낚시를 시작할 때쯤에 읍내 장터와 냇가로 이어지는 신작로에 저 멀리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자전거를 타고 옆집 사는 애덕이 누나가 나타났다.

춘삼이는 아이에게 붕어를 잡으면 살림망 삼아 가져온 양은 주전자 속에 잘 넣어두라 당부하더니 어디 잠깐 다녀오겠다며 애덕이에게로 부리나케 달려간다.

잠시 대화를 나누는가 싶더니 춘삼이는 애덕이 자전거 뒤에 타고 성동산으로 이어지는 산길로 접어든다.

중심을 잃을 듯 말듯 자전거가 휘청거릴 때마다 둘은 시시덕 깔깔거리더니 곧 시야에 사라졌다.

잠시 뒤 한참 잘 낚이던 붕어도 어느 순간 입질이 끊어지니 세상에 그보다도 무료한 상황이 없게 되었고 그나마 낚싯줄로 쓰던 무명줄이 수초에 감겨 끊어지는 바람에 이제는 그나마 낚시도 못 하게 되었다.

어느새 먼발치 하늘에서는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하더니 곧 비라도 쏟아질 듯 하늘을 시커멓게 덮기 시작한다.

아이는 낚싯대와 붕어를 담은 주전자는 자리에 내팽개친 채 춘삼이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산길로 접어들 무렵부터 굵은 빗방울이 후둑거리며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삽시간에 장대비가 장하게 사방을 뒤덮으며 세찬 바람에 우연까지 일으키며 내리기 시작한다.

아이는 세차게 내리는 소나기에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 한참 만에 후삼국 시대 견훤이 쌓았다는 무너진 토성으로 이어지는 오솔길 옆에 무너져 내릴 듯 서 있는 상엿집에 다다랐다.

슬레이트 지붕과 블록 벽돌로 대충 지어진 상엿집 녹슨 함석문 옆에 기대어 세워진 애덕이 누나의 자전거가 보이자마자 달려가 문을 열고 들어갈까 생각했지만, 순간 또 묘한 예감이 스치자 아이는 생각을 바꾸어 침을 꼴깍 삼키며 살살 상엿집 뒤쪽으로 돌아가 블록 벽돌 구멍 사이로 상엿집 내부를 들여다본다.

울긋불긋 상여 옆에서는 마침 춘삼이가 애덕이를 짚더미 위에 뉘어놓고 커다란 가슴에 포도송이처럼 달린 까만 젖꼭지를 빨아대며 애덕이의 알록달록한 꽃무늬 팬티를 마지막으로 벗겨내더니 검은 계곡에 손가락을 넣어 살살 비벼대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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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로주점 2020-07-09 16:28:00

    비단같이 매끄럽게 하여 상대방을 현혹시키는 구라와
    설총이 화왕계에서 신문왕에게 말한 교언영색은 색깔이 같을까요?
    초록 나뭇잎을 보며 문득 떠오르는 생각입니다.
    초록은 동색!
    박사모를 만들어야 할것 같습니다.
    박작가님을 사모하는 모임.   삭제

    • 피더팬 2020-07-09 00:01:29

      작가님의 글을 읽으니 학창시절 제가 좋아했던 친구 누나가 생각납니다.
      긴 머리에 짤록한 허리를 한 그누나는 무척이나 새침했지요. 누나 얼굴 보려고 친구집에 가기도 했습니다.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예쁜 누니는 제 첫사랑이었는데 제 마음을 알련지 모르는지.   삭제

      • 장군의 아들 2020-07-07 09:20:48

        이젠 포도송이를 볼때마다 애덕이가 생각날듯합니다.
        포도를 좋아해서 엄청 따먹어야 하는데..ㅍㅎ   삭제

        • 울산새댁 2020-07-06 23:05:16

          나폴레옹과 히틀러는 몰락하기 직전에도 그를 지지하는 세력이 많았던 걸로 알고 있어요.
          프랑스의 영웅인 나폴레옹과 독재자 히틀러.
          그들이 단시간에 그렇게 된 것은 아닐거예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 것이며 주위에 자신을 따르는 사람을 배치하기 위해 심사숙고 했을까요?
          독재라해서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좋은 모습이 있으면 배워야 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삭제

          • 라푼젤 2020-07-06 23:00:27

            히틀러와 나폴레옹.
            두 사람 모두 단신이며 웅변력이 뛰어났지요?
            커무니케이션능력이 뛰어났다, 즉 상대방의 마음을 잘 읽고 대중의 마음을 잘 읽었다는건 소통력이 남달랐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타인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드는만큼 뛰어난 능력이 어디있을까요?
            그게 구라가 됐든 처술능력이 됐든 그들이 역사속의 잊혀지지 않는 인물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삭제

            • 꼬맹이 2020-07-06 20:50:08

              '아디'라는 애칭을 가졌던 히틀러는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공무원이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때문에 꿈을 이루지 못하는 시간을 보내며 인종학에 빠져들게 되었다네요.
              더구나 유대교를 믿으면서 예수를 부정하는 유대사람은 본성이 사악하다는 가르침을 게오르크 폰 쇠네러에게 받았고, 당시의 오스트리아 빈 시장인 뤼거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유대사람을 탄압했는데 뤼거의 열렬한 지자자였던 히틀러는 당연히 많은 영향을 받았겠지요.
              어린시절의 히틀러를 보면서 화가의 꿈을 키워나갔으면 세계대전의 원흉이 되지 않았을텐데요.   삭제

              • 예향유 2020-07-06 18:08:21

                단비님, 들풀님 같이 애독하게 되어 반갑습니다.
                우리 작가님께 단행본 나오면 싸인받기로 해요~^^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공통점을 찾아보게 되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삭제

                • 단비 2020-07-06 18:03:10

                  작가님의 글 늘~기대됩니다.
                  들플님 반갑습니다.
                  오늘의 여주인공 애덕이가 정겹게 와 닿네요^^   삭제

                  • 들플 2020-07-06 17:39:12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공통점이 왕따였다는
                    그래서 영웅이 되었다는
                    결론이 매우 설득력으로
                    들렸습니다
                    매번 글이 올라 오기를 고대하는
                    독자로서 오늘글은
                    매우 감동이였습니다   삭제

                    • 굴러가다 말음 2020-07-06 13:19:33

                      아이~참!
                      야설의 내용을 감칠맛 나듯이 끊으셨으니 그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집니다.
                      인문학 글도 짱!입니다.   삭제

                      13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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