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연재 박중진 작가의 야설(夜說) 연재
성인 콩트- 4 그들은 지금 어디에 살고 있을까?동네 누나가 교복을 입은 채 위아래로 격렬히 요분질을 하며 교성을..
  • 광양경제신문
  • 승인 2020.06.15 09:40
  • 댓글 9

성인 콩트 4 그들은 지금 어디에 살고 있을까?

기존의 이론과 정설을 뒤집는 주장으로 파란을 일으키며 세상 자체를 바꾸어 위인 반열에 오른 사람들이 있다.
또한, 처음 등장했을 때는 지극히 하찮고 보잘 것 없었던지라 비웃음과 조롱마저 받았지만, 나중에는 세계사의 판도와 흐름마저 바꾸었던 물건과 발상들도 있게 마련이다.

오늘은 그에 관련된 이야기이며
세상을 바꾼 역발상에 관한 책들이 이미 수도 없이 발간되었기에 의미 없는 중복 글이 될 수도 있겠으나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는 명제를 기저에 깔아본다.
 
한두 분이라도 고개를 주억거려주면 보람이며
여기저기 주워온 잡지식이므로 두서없고 난삽하매 이 점 미리 염두에 두시라는 첨언 또한 밑자락으로 깔아본다.

또한, 내 끄적임이 늘 그렇듯 인문학적인 이야기가 끝나면
‘썰’이 등장하는 데 이제 여러분들은 그것이 알짜배기임을 알고 있다.

초등 시절 도시락 밑에 깔린 계란 후라이처럼, 또는 스님이 드시던 짬뽕면 밑에 은밀히 깔린 고기처럼 그것은 열심히 글을 읽어준 독자분들에 대한 감사 차원의 보상이니 여러분들은 숨겨두고 몰래 먹는 음식이 맛있다는 세상의 진리를 이미 터득하고 계신 분들이다.

등자의 발명
등자(鐙子,stirrup)는 말에 오를 때나 말 위에서 균형을 유지하고 양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안장에 매달아 양발을 걸치게 했던 승마용 편의 도구를 일컫는 단어이다.

등자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한 분이 많겠지만, 하찮아 보이기까지 하는 물건이 등장함과 동시에 역사는 대변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기록상으로 말을 인간이 사용한 것은 기원전부터였지만 등자가 발명되기 전의 기병의 가치는 그리 크지 않았다.

말에 탄 사람이 굴러 떨어지기에 십상이었을 뿐더러, 간신히 균형을 잡느라 두 손이 자유롭지 않아 무기의 운용은 꿈도 못 꿀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것이 등자가 발명되면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고구려 무용총 벽화의 수렵도를 참고해보자.
분명 무사의 발은 등자에 얹혀있는 게 보이는데

아래 그림에서처럼 몸을 돌려 활을 쏘는 역동적인 무사의 동작은 등자가 없다면
아예 시도 자체가 불가능한 자세이며
말안장에 등자를 달면 말과 기수의 무게에 속도를 결합해 3배 이상
힘을 발휘하고 대상물에 주는 충격도 그만큼 커진다고 한다.

 

 이로 인해 보병 중심의 전쟁에서 기병이 전쟁의 전술 핵심으로 부상하게 되는 양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났고 이후 유럽에서는 마장 마술의 발전과 더불어 말을 타고 전투를 벌이던
기사들의 전성시대가 도래하게 된다.

칭기즈칸의 기병들이 유럽까지 쳐들어가 대제국을 형성하는데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것이
바로 등자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등자의 발명은 수많은 문명을 역사에서 탄생시킴과 동시에 지워버리는 역할도 했다.

배가 산으로 가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은 무언가 상황이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하지만 대홍수가 끝나고 노아의 방주가 산 위에 얹히게 되었던 성경 상의 이야기 말고도 세계사에서는 배가 실제로 인간의 힘으로 움직여져 산으로 간 사례가 종종 등장한다.

바이킹은 이동 경로에 산이 가로막고 있어 내륙을 공격하는 데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자신들의 선박을 들고 옮겼다고 전해진다.

또한, 배를 산으로 옮기는 작전이 주효하여 적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는 전략적 역발상이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한 전투는 1453년 벌어졌던 비잔틴 제국의 콘스탄티노플 공성전이다.

이슬람군은 철옹성 콘스탄티노플 함락을 위한 작전 중 하나로 배를 끌고 산을 넘기 위해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이게 되는데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해발 60m의 갈라타(Galata) 언덕을 가로질러 골든 혼 해협까지 배를 이동시키기 위한 새로운 길을 만들게 된다.

어둠을 틈타 갈라타 언덕을 넘어 하룻밤 만에 대규모 함대를 이동시킨 오스만군이 콘스탄티노플을 둘러싼 모든 바다를 차단해버리자
콘스탄티노플 수비대의 심리적 타격은 회복할 수 없는 수준으로까지 떨어진다.
물론 난공불락의 요새가 함락된 것은 위 사실 외에도 여러 다른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기는 했지만, 배를 산으로 이동시킨다는 역발상의 작전이 주효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며 찬란한 천년의 문화를 자랑하던 비잔틴 동로마 제국은 결국 1453년 멸망을 맞이하게 된다.

-시간은 영원히 변함이 없으며, 인간들만이 태어났다 사라질 뿐이다.- 홍봉기
                                                    

성인 콩트 4 그들은 지금 어디에 살고 있을까

학교가 파하면 아이들은 보자기 책보를 허리춤에 둘러매고 산으로 들로 천방지축 뛰어다녔다.
갓 부화하여 솜털도 안 난 새 새끼나, 알록달록 새알이 서너 개 있는 새 둥지를 찾아내는 것이 왜 그리도 재미있었는지.

뻐꾸기 우는 철,
관목숲을 뒤지고 다니느라 옷이 찢기고 여기저기 긁히고 다친 생채기가 아물 날이 없었지만, 힘들게 포란 중인 멧새 둥지 하나라도 찾아내게 되면 그 이상 자랑스럽고 기쁜 일은 이 세상에 없는 듯 우쭐거렸다.

어른 손톱만 하던 새끼 새의 조물조물 심장 뛰는 느낌이 손바닥에 흐뭇하게 전해질 때의 느낌과 희열을 지금 아이들은 알 수나 있을까?

지금 생각하면 그게 뭐 그리 재미있는 놀이였을까도 생각하지만, 그 당시 시골 아이들에게 허용된 놀이와 유희가 상당히 제한적이었다는 것을 고려해본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이야기일 것이다.

아무리 미물일지라도 생명을 유희의 대상으로 삼는 자체에 대한 죄책감도 없던 시절이었을뿐더러 마땅히 그 계절 그에 상응할 만한 희열을 느낄만한 놀이를 찾기도 힘든 시절이었다.

지금의 아이들이 컴퓨터나 스마트폰의 스크린을 통해 간접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세대라면, 당시의 아이들은 자신들이 직접 능동적으로 자신의 몸을 움직이지 않고 재미를 얻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절대빈곤의 시기가 막바지로 치닫는 시점과 새마을 운동이 막 시작되던 경계 지점을 유년기로 보냈던 세대들은 기억하리라.

아이들은 너나 할 거 없이 초겨울부터 이른 여름까지 누런 코를 흘리고 다녔고 한겨울 새카만 때가 덕지덕지 두텁게 올라 거북등처럼 갈라진 손등에서는 피가 비치기도 했다.


남자아이들은 딱지치기, 다방구, 오징어 찡, 제기차기, 연날리기, 썰매 타기 등등에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어쩌다 프로레슬링 중계가 있는 날이면 동네에서 유일하게 'TV'가 있던 동네 이장 집의 아들에게 뇌물로 딱지를 바쳐가며 굽신굽신 허락을 받아야 ‘테레비’를 볼 수 있었다.

동생도 끼워달라며 왕딱지 밑에 구슬 서너 개 더 쥐여주면 녀석이 눈을 찡긋하며 동생의 시청도 허락해주었는데, 동생이 뛸 듯이 좋아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김일, 장영철, 천규덕, 여건부가 반칙을 일삼던 치사한 일본 선수들을 때려눕힐 때의 통쾌함을 그 무엇에 비할까.

홍수환이 카라스키야를 때려눕히고 4전 5기의 신화를 만들에 내던 순간에는
모두가 애국가를 부르며 눈물을 글썽이며 만세를 불렀다.

하지만 당시에 새집 맡기보다도, 김일의 박치기 레슬링보다도, 주말 저녁에 방영되던 타잔이나 나시찬 주연의 드라마 ‘전우’보다도 더 흥미롭고 재미있던 것이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봄바람 춘정을 못 이겨 아이들 못지않게 산으로 들로 쏘다니던 동네 형들과 누나들을 몰래 뒤따라가 그들의 거사를 훔쳐보는 일이었다.

새집을 서로 맡는다며 경쟁적으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아이들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숨죽여 동작을 멈추며 동시에 몸을 숨기는 때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먼발치에서 산이나 보리밭으로 들어서는 고등학생 형, 누나를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아이들은 모든 것을 팽개쳐두고 앞으로 생기게 될 구경거리에 대한 기대에 몸이 후끈 달아올라 몸을 숙여 조심조심 그들을 따라갔다.

당시 초등학교 이 삼학년 꼬맹이들이었을지라도 남녀 간의 운우지정에 대해서 알만큼은 알고 있었던 터라 그보다도 더 자극적인 구경은 이 세상에 없었다.

동네 누나가 교복을 입은 채 위아래로 격렬히 요분질을 하며 교성을 지르는 장면에서는 보물처럼 숨겨두었던 새끼 종다리가 주머니에서 빠져나가는 줄도 모르고 몰입을 했고,
내 심장 쿵쾅 소리가 혹여 다른 아이에게 들릴까 염려가 될 정도로 내 호흡도 저절로 가빠졌다.

짓궂은 녀석들은 정신없이 운우지정을 나누는 청춘들의 뒤로 돌아가
시커먼 막대기가 선 분홍 동굴 속을 드나들며 적나라하게 방아질 하는 것을 침을 꼴깍 삼키며 관찰하기도 했다.

뒷산 다복솔 우거진 무덤가 풀밭은 주로 동네 청춘들이 사랑을 나누는 단골 터였지만
그곳에 드나드는 사람들은 동네 형 누나들뿐만이 아니었다.

                                                            다음 주에 계속

광양경제신문  webmaster@genews.co.kr

<저작권자 © 광양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양경제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9
전체보기
  • 아이엠코모 2020-06-19 14:56:37

    외설을 문학으로 바꾸는 힘.
    사회통념을 부수는 글의 힘.   삭제

    • 라푼젤 2020-06-16 00:45:40

      톱니바퀴가 기계문명의 기초가 된 것 처럼 등자의 발명은 세계사를 바꾼 마구가 되었군요.
      작가님의 글은 세계사와 야설을 아주 적당한 비율로 반죽해 숙성시킨 밀가루반죽처럼 글이 쫀득쫀득 합니다.   삭제

      • 해바라기 2020-06-15 23:56:53

        글의 내용과는 상관없지만 관음증은 인간의 보능인가 아닌가를 생각해 봅니다.
        작가님 다음 글이 기다려 지네요.   삭제

        • 울산새댁 2020-06-15 23:54:33

          등자의 발명으로 보병중심에서 기병중심의 전략으로 싸움이 바뀌게 되는군요.
          그런데 등자가 무슨 찰못을 해서 학생들이 저리되었을까요?   삭제

          • 피더팬 2020-06-15 23:49:50

            학생들이 너무 성숙했구려~   삭제

            • 아일라 2020-06-15 23:26:31

              선생님~
              전 묻고 싶어요.
              고등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그리 요분질을 했을런지?
              전 기껏해야 손 한번 잡는것도 어려웠거든요.
              물론 소설이지만..
              어른들 말씀에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것들이..
              씽긋 웃고 갑니다.   삭제

              • 즐살아님 2020-06-15 14:20:55

                교복입고 요분질하며 교성지르는 장면 상상안했음   삭제

                • 예향유 2020-06-15 13:55:54

                  등자로 인한 고구려와 몽골의 기마병, 콘스탄티노플의 공방전 등 세계사의 변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놀라울
                  따름..
                  게다가 야설까지?
                  작가님의 배경지식의 끝은 도대체 어디까지일런지요?
                  새집맡기 못해본 도시촌년이라 그 느낌이 어떤지 궁금한 1인입니다.   삭제

                  • 작은 거인 2020-06-15 11:02:45

                    작가님의 글은 숨겨두고 몰래먹는 꿀단지처럼,
                    또는 산속에서 길을 헤매다 깊은 옹달샘을 찾은것처럼 읽을수록 꼴깍 꼴깍 침이 삼켜집니다.
                    너무 흥미로와요.   삭제

                    여백
                    많이 본 뉴스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