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할 때면 집 근처 가야산을 산책하곤 한다. 층층계단으로 이어진 가파른 정상으로 가는 길보다는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는 불광사 가는 길목의 오붓한 오솔길이 마음에 들어 늘 그쪽으로 발길이 향했다. 오후 4시 무렵이면 어김없이 유모차를 끌고 가는 할머니와 마주치곤 했다. 맨 몸으로 걷기도 버거운 산길을 할머니는 시장이나 식당에서 버려지는 생선뼈를 모아서 고양이들의 먹이를 해결해주기 위해 유모차에 싣고 산을 오르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만났던 고양이들, 처음부터 그곳이 고양이 숲은 아니었다. 할머니가 유모차에 생선뼈를 싣고 비린내를 풀풀 풍기며 다가가면 냄새를 맡고 달려온 고양이들이 할머니를 에워싼 채 입맛을 다시며 빨리 달라고 보챘다. “아유 예뻐라 어쩜 이리 귀여울까” 할머니는 고양이 등을 쓰다듬고 어루만지며 챙겨온 보따리를 풀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찾아와 보살펴주는 할머니에게 우르르 몰려와 안기는 고양이들은 손자 손녀를 대신해 재롱을 부리며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고양이들이 몰려왔는지 고양이들이 불광사 부근에 가득했다. 얼핏 보면 같아보여도 각기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고양이들, 발자국 소리가 나면 나무 뒤에도 숨고 바위 뒤에도 숨던 고양이들이 숨기는커녕 지나는 사람들과 눈빛을 마주치고 눈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고양이와 눈도 맞추지 못했던 필자도 점점 익숙해져서 고양이들과 마주치는 게 불편하지 않고 친근한 이웃처럼 편안하게 느껴졌다. 

추운 겨울이 찾아오자 고양이가 걱정이 된 할머니는 여기저기 길 어귀에 바람막이 집을 마련하여 고양이가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할머니와 고양이들은 한집에 살지는 않았지만 함께 사는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다. 바람이 매섭게 부는 어느 겨울날 시간이 지나도 할머니가 나타나지 않았다. 매일 그 시간이면 길목에서 기다리던 고양이들은 할머니가 병이 나지 않았는지 몹시 걱정이 되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할머니는 나타나지 않았다. 

할머니가 갑자기 발길을 끊자 고양이 눈동자가 슬픔으로 그렁그렁했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이별 앞에서 밀려오는 그리움과 허기를 견디다 못해 서로 할퀴고 물어뜯는 날들, 머지않아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몇 번의 겨울이 와도 할머니의 모습은 다시 볼 수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상처가 깊어진, 코를 킁킁거리며 할머니를 고대하던 고양이들이 숲에서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고양이가 사라진 숲은 고양이 앞에선 오금이 저려 도망도 못가고 쩔쩔매던 다람쥐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길모퉁이에서 혹은 비탈길에서 불쑥 불쑥 나타나던 고양이들,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바위 틈 혹은 풀숲 어디선가 야옹 야옹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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