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꽃일까?

요즘 내가 반하다시피 한 어느 작가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지난주, 라디오에서 소개할 동화를 찾고 있는데 유난히 가슴 깊이 들어온 책이 있었다. 단편 동화집, [감나무 위 꿀단지]!
6*25전쟁과 1970년대를 배경으로 따뜻하고 익살스레 풀어낸 가족 이야기였다. 어른이 주인공인 특별한 동화였는데, 읽는 내내 입가에 웃음을 달게 했다. 그러는 사이 그 시대의 아픔과 슬픔이 가슴 깊이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짧은 단편 동화에 어떻게 이리도 깊은 감동을 담았을까? 연륜이 깊지 않으면 결코 쓸 수 없는 작품이었다.

작가를 살펴보니 우리 시 문화도시사업단에서 발간한 [섬진강 두꺼비 다리]를 썼던 양정숙 작가다. ‘아, 연세가 좀 많으신 분이지? 과연 그래서 이런 동화를 쓰실 수 있으셨구나!’ 싶었다. 궁금한 게 많아졌다. 양정숙작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동화를 읽을 때만큼이나 큰 감동을 느꼈다.
작품 속에 녹여낸 그녀의 어린시절의 6*25와 먼 길을 걸어 학교를 오갔던 소녀시절 이야기,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자녀를 억척스레 키워내는 동안에도 잃지 않았던 꿈, 문학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그녀는 쉰 살에 수필을 써 등단했다. 배워서 더 잘 쓰고 싶어 예순다섯에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장벽처럼 느껴지던 영어를 이겨가며 마침내 문예창작과를 졸업할 때 그녀의 나이 일흔이었다. 다시 일흔셋에 아동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일흔이 넘어 새로운 것에, 그것도 동심을 나누는 동화를 시작하다니! 부질없다고 걱정하는 시선도 많았다. 그러나 그녀는 젊은 문우들 틈에 끼어 쓰고 고치고 또 고치고 하얗게 날을 지새우며 묵묵히 그 길을 갔다.

그리고 그해 겨울 무등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당당히 당선됐다. 놀라운 일을 해내었다며 그녀를 칭찬하느라 주변이 시끄러웠고, 그녀가 다녔던 학교에도 대형 현수막이 걸렸다. 그러나 주변의 들뜸은 남의 일인냥, 그녀는 책상에 앉아 여전히 쓰고 고치고 또 썼다. 그 결과로 그녀의 첫 번째 동화집이 세상에 나왔다. 자비를 들인 출간이 아니었다. 당당히 문예재단 창작지원금 공모에 당선된 것이다, 등단하고 멈추어 자신의 책 한권 남기지 못해 아쉬워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볼 때 참 대단한 일이다. 그리고 일흔일곱이던 지난해에 수많은 경쟁작을 물리치고 단편동화 [감나무 위 꿀단지]로 천강문학상을 수상했다.

일흔여덟이 된 올 3월에는 두 번째 단편동화집 [감나무 위 꿀단지]를 펴냈다.
지금 그녀는 곧 출간될 세권의 동화집을 탈고하고 있다. 첫 번째 장편동화집도 포함되어 있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 누구라도 어떻게 벅차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녀는 어떤 위대한 작가보다도 아름다웠다.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그녀가 쉽게 젊은 나이에 배우고 동화를 썼다면 어떻게 됐을까? 어쩌면 더 많은 문학상을 휩쓸고 훨씬 더 많은 작품을 발표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래서 그게 더 좋은 편일까?

그 물음에는 얼른 답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랬다면 내 가슴을 절절히 울리는 [감나무 위 꿀단지]같은 작품은 없었을지 모르니까! 그녀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 쓰기 시작한 그녀만이 쓸 수 있는 동화를 쓰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향기와 빛깔이 있다. 어렵게 피어난 꽃일수록 더 갸륵하고 아름답다. 크고 화려해야만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세상에 꽃은 그 종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지만, 최고의 꽃은 사람이다! 사람마다 꽃을 피워내고 있기에 세상은 따뜻하다.

손에 집히지 않는 적, 코로나19가 나라를 뒤덮을 때에도 꽃들은 세상을 버티게 해주었다. 아직도 현장에서 집에 돌아가지 못한 채 봉사하는 의료인들의 헌신, 수많은 자원 봉사자들, 사회를 위해 스스로 사회적 거리두기, 자가 격리를 해내는 사람들. 펜대믹 사태에서 공조하며 서로 지원하는 국제사회의 물결. 이 사태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되는 날들이 왔을 때 지금 우리가 피우고 보았던, 온통 향기롭던 꽃들을 잊지 않기를, 그래서 우리 각자를 끊임없이 피워낼 수 있기를 소망한다.

광양경제신문 webmaster@genews.co.kr

트윗하기

광양경제신문의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