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란 신비하기 짝이 없다. 평소 때는 지극히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다가도 그 말의 뜻을 생각하면 스스로 감동 받을 때가 종종 있다. 비록 문자(文字)는 사람들이 필요해서 만들어 냈지만, 그 문자가 내 경험과 적절하게 만나는 순간 감동하게 되는 것이다. 언어의 무게가 곧 경험의 무게라고 본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별 때문에 술병을 비워보지 못한 사람은 술의 쓴 맛을 알기 어렵고, 신으로부터 용서를 받아 보지 못한 사람은 죄인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른다. 자궁(womb)과 무덤(tomb), 삶(live)과 떠남(leave), 묘지(grave)와 은혜(grace), 지우다(cancel)와 암(cancer), 벌레(worm)와 따뜻한(warm) 또한 그렇다. 모두 알파벳 하나 차이거나 발음이 유사하지만 알고 보면 다 한 식구임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모든 인생 문제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삶과 죽음이 그렇고, 사랑과 상처가 그렇고 불행과 행복 또한 그럴 것이다. 뒤집어 놓고 보면 똑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살면서 경험하는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결국 우리가 어떤 것을 경험한다는 것은 곧 언어를 경험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때론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게 언어이기는 하지만, 힘들 때 우리 마음을 거들어 주고 또 위로를 해 주는 것도 결국은 언어다. 그런 언어가 우리 삶을 어루만져 주지 않는다면 우리 삶은 얼마나 더 고단하고 쓸쓸하겠는가.
 

홍봉기 기자  lovein29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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