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물리적인 폭력이 있고 존재론적인 폭력이 있다. 존재론적인 폭력은 물리적인 폭력보다 훨씬 그 강도가 세며 오래간다. 존재론적인 폭력은 나답게 살지 못하고 자본의 위압에 내 자아가 상처 받거나 억압받으며 살고 있는 폭력을 말한다. 

좀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학교 다닐 때 받았던 선행상도 자칫하면 존재론적인 폭력으로 둔갑할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그 때부터 나는 선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기 때문이다.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내가 과도하게 억압을 받으며 아우성을 치고 있지만, 모른 척 하는 것이 바로 존재론적인 폭력이다. 

이처럼 자신을 지나치게 억압하게 될 때 자아는 왜곡되고 뒤틀리게 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가짜 자아의 탈을 쓰고 진짜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런 삶을 가리켜 광대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민망하게도 우리는 조금씩 그런 광대짓을 하면서 밥을 벌어먹으며 살아가고 있다. 

실존주의 철학자였던 사르트르가  ‘타인을 지옥’ 이라고 규정한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좀 지나친 면이 없지는 않지만, 타인의 시선에 갇혀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말의 뜻을 어느 정도 수긍할 것이다. 인간이 인간답다는 것은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데, 자본주의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오로지 자본이 인도하는 대로만 살아갈 뿐, 자기답게 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마음은 늘 공허 속에서 공회전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아니, 소외된 자아들만 득실거리며 충돌할 뿐 진정한 타인들을 만나기 힘든 세상이다. 타자가 사라지고 천편일률적인 것들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면 우리는 아무것도 경험할 수 없다. 우리가 무엇을 경험한다는 것은 타자를 만나 교감을 나눈다는 것인데, 사람들은 생각한 것처럼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 나름대로 접근금지 구역을 만들어 빗장을 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종교 역시 인간을 소외시킬 위험성이 다분하다. 신이라는 절대적인 이름으로 입을 닫게 만드는 것은 물론, 무조건 믿으면 된다는 논리가 그렇다. 믿으면 알게 된다며 아리송한 말까지 첨가하면서 말이다. 우리가 진정한 인간이 되는 길은  서로의 고통을 나눌 때 확인된다. 짐승은 다른 게 아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 연민을 느끼지 못하는 것, 그게 바로 짐승이다. 현대인들이 자꾸 말하는 짐승으로 전략되어가는 원인 중의 하나다. 

매일 사람들을 지배하는 sns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사진과 글을 하나 올렸다 하면 죄다 ‘좋아요’를 누를 뿐, 나의 고민을 나눌 짬이 없다. 쉽게 식상해하고 무료함을 느끼게 되는 이유다. 타자를 배척하고 모든 것을 획일화하는 광기가 사람들로 하여금 정신적인 테러리스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런 예는 멀리 갈 것도 없다. 기독교의 절대성이 그렇고 이슬람의 근본주의가 그렇다. 그들 눈에는 자기 신만 보일 뿐, 타인은 모두 구제대상이거나 아니면 지옥의 땔감 정도로 여기는 것이다. 이 역시 구원을 빙자한 또 하나의 교묘한 폭력에 다름 아니다. 

재독 철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한병철은 ‘셀카 중독’도 타자가 소멸된 상태에서 내면의 공허에 직면하여 자신을 생산하려고 헛되이 노력하는 “고립된 나르시시즘적 자아의 공회전일 뿐”이라고 진단하고 있는데 정말 맞는 말이다. 타자가 현존하지 않을 때 그런 소통은 정보들의 가속화된 교환으로 전락한다는 것. 

그리고 그런 획일적인 소통은 어떤 관계도 만들어내지 못하며, 오로지 연결만 낳을 뿐이라고 주장하는데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가 제시하는 해법은 환대와 경청이다. 경청은 타인들의 현존재에 대한, 그들의 고통에 대한 행동이자 적극적인 참여라는 것. 경청은 사람들을 연결하고 매개하여 비로소 참된 공동체를 만들어낸다. 

우리는 모두 눈만 뜨면 소통을 이야기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진정한 소통이 이뤄지려면 먼저 상대방의 고통을 함께 공유할 자세가 되어 있어야한다. 고통을 배제한 채 밝은 것만 취하려고 할 때 우리는 ‘좋은 것이 좋다‘는 식의 또 다른 존재론적인 폭력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홍봉기 기자  lovein29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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