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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새해가 열린 지 보름이 지났다. 2020이란 숫자는 우선 시각적으로 보기에 아름답다. 20이라는 쌍둥이 숫자로 이뤄진 것도 새롭고, 직선이나 꺾이는 선이 없는 2와 0으로 이뤄진 숫자 조합도 부드럽다. 생각해보니 이런 쌍둥이 숫자로 이뤄진 연도를 맞는 것은 한 세기에 한 번뿐이다.
1717, 1919, 2020년은 평생 한 번밖에 없는 연도이기에, 이런 기분 좋은 조합의 연도에 살아보는 행운에 감사한다. 세기에 한 번, 일생에 한 번, 나와 함께 보낼 2020이라는 숫자가 소중해 진다. 그래서일까 올해는 좀 좋은 소식으로 많이 채워졌으면 좋겠다.
수년 전 미국 국무성에서 외교관 채용 시험이 있었다. 이미 필기 고사를 거쳤기에 합격자 후보는 상당히 추려져 있었다. 하지만 최종 구술시험의 경쟁도 치열했다. 박사 학위 소지자, 대대로 미국에 정착해 살고있는 백인 엘리트, 그리고 국제 외교 분야에서 상당한 실무 경력을 쌓은 실력자가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주리도 국무성 필기시험에 합격해서 구술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세 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에 온 그녀는 사실 지원자들 중 가장 불리한 여건에 놓여 있었다. 우선 그녀는 누가 보아도 동양인이었고, 아무런 경력도 배경도 없을뿐더러 박사 학위조차도 없었다. 경쟁자들은 모두 쟁쟁한 실력자들이다. 구술시험 당일 주리는 면접관 앞에 앉아 있었다.
“자료를 보니까 한국계 이민 2세던데 맞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면접관의 다음 질문이다. “당신은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지금은 미국 시민으로 살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이번 시험에 합격한다면 미국 정부의 외교관이 되는 것입니다. 외교 활동 중에 미국과 한국의 이익이 충돌하게 되는 상황은 충분히 벌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 놓였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느 나라의 편에 서겠습니까?” 주리는 대답 했다.
“저는 한국과 미국, 그 어느 편에도 서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요?” “저는 정의의 편에 설 뿐입니다”. 주리가 시험에 합격한 것은 이 한 마디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수험자들이 비슷한 질문을 받고 미국의 편에 서겠다고 대답했지만 그 사람들은 모두 합격하지 못했다.
주리가 받은 질문은 사실 대답하기가 굉장히 곤란하고, 어려운 질문이다. 주리는 어떻게 해서 저렇게 잘 대답할 수 있었을까요? 기독교인으로 자라온 주리는 어린 시절부터 성서를 배우고 읽었다. 성서 속에서 그녀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단어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공평하고 의로운 것을 뜻하는 ‘공의로움’ 즉 ‘정의’였다. 정의라는 개념은 그녀의 삶 속에 스며들어 있었고, 그녀에게 있어 가장 높은 가치관이 되었던 것이다. 주리에게 있어서 외교관 시험 합격이라는 개인적인 성공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주리는 개인적 성공보다는 가족 간의 사랑이, 가족 간의 사랑보다는 국가의 이익이, 국가의 이익보다는 정의가 더 중요하다는 가치관이 서 있었던 것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워야 할 검찰을 향하여 ‘정치에서 손 떼라’는 국민의 여론이 들끓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말이다. “검사님의 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안 해보셨습니까? 재판부 지시 좀 따라주세요. 자꾸 그러면 퇴청 요청할 겁니다.” 한국의 검찰이 무오류 신화에 빠져 독점한 권력을 놓지 않으려고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과도 접촉하고 있다. 불신에 빠진 검찰의 행태를 보고 있는 국민의 가슴에서는 한숨 소리만 흘러나온다.
4월 총선에서 ‘정치꾼’들은 사라지고 ‘봉사하는 정치인’으로 싹 물갈이가 이뤄졌으면 좋겠다. 특권과 반칙으로 양심을 분노케하는 사람들보다 정의와 평등을 갈구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이 베풀고 양보하며, 어려운 사람들의 입장을 헤아리는 너그러운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이 아름다운 모양을 가진 2020년에 억울하고 외롭게 삶을 스스로 끝내는 사람들의 뉴스를 더 이상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공이공’ 공처럼 둥글게 둥글게 올 한 해가 굴러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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