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사람들이 있어 우리를 놀라게 한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그 사람의 딱한 사정을 동정하면서도, ‘죽을 용기가 있었다면 이를 악물고 살 용기는 없었는가?’고 묻고 싶기도 하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듯, 스스로 선택한 죽음에도 여러 가지 이유들이 딸려있을 것이다.
 

목구멍에 풀칠하기 어려움을 비관하다가 세상을 하직하기도 하고, 갑자기 몰아닥친 파산으로 절망을 이기지 못해 죽음을 택한 사람도 있다. 오직 하나 믿었던 사랑에 배신을 당한 후 살 의미를 잃고 죽음을 택한 젊은이가 있는가 하면, 억울한 누명을 죽음으로써 벗으려는 사람도 있다. 혹은 따돌림에 시달리다가 마지막 벼랑을 택하는가 하면, 뚜렷한 이유도 없이 그냥 세상이 무의미하고 인생이 허무해서 목숨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죽음으로써 해결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목숨을 제 마음대로 버리는 자살은 누구에게서도 용서 받을 수 없는 무책임한 행위이다. 보도에 의하면 노년층의 자살률이 두 배에 가깝게 늘었고, 새 학년이 시작되는 3~4월에 목숨을 버리는 청소년들이 많다고 한다. 왜 하필 3~4월인가? 만물이 약동하고 생명의 윤기가 왕성한 봄날에, 인생의 봄, 그 주인공인 청소년이 왜 절망하고 슬퍼하는 것일까?
 

자살의 이유를 겉에 드러난 그대로 순수하게 믿어야 할 때도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살아낼 용기가 모자라거나, 어려움에 직면할 의지가 없거나, 고통을 이겨낼 자신이 없어서 죽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절대의 빈곤에서는 빈곤을 슬퍼할 겨를이 없다. 절대의 난관에서는 주저앉을 여유조차 없다. 그럴 때는 오히려 살 구멍을 찾는 게 인간의 본능이다. 
 

따라서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어떤 경우이건 죽으려고 하는 모습보다 아름답다.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삶을 포기하는 모습에 비교할 수 없다. 그만큼 위대하고 감동적이다. 그러기에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돕는 일은 우리 모두가 힘써야 할 덕목이다. 생명은 존귀하고 소중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지음 받은 존엄한 존재라는 사상은 우리에게 중요한 지혜이다. 
 

인간에 대한 존엄성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나라들의 법의 근간을 이루는 최고의 가치요 철학이다. 생명(生命)은 ‘살라는 명령’이다. 사람은 무조건 살아야 하고, 무조건 살려야 한다. 진정 사람을 살리는 것은 희망이다. 삶에 희망이 출렁일 때 우리는 행복한 것이다. 행복은 매순간 가꿔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행복을 완료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라고 한다. 
 

과학문명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삶의 여건도 좋아지고 있건만 희망을 잃고 아파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세계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고, 국민소득 3만 불의 경제생활을 자랑하지만 국민의 행복지수는 한참 뒤떨어져 있다. 그것은 한국이 세계적으로 자살률이 1-2위를 차지하는 불명예를 털어버리지 못하는 것과도 상관이 있다
 

‘빙점’이라는 작품으로 명성을 떨친 일본의 여류작가 미우라 아야꼬는 28세에 페결핵 환자로서 13년 동안 치료하면서 많은 고통을 겪는 중 자살을 생각 했다. 이때 아야꼬는 “산다는 것은 우리 인간의 권리가 아니고 의무입니다. 의무라는 것은 글자 그대로 올바른 책임 이지요”하는 권고를 들었다. 아야꼬는 ‘산다는 것이 의무라면 어떤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우선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고백 했다.
 

타고 난 목숨이라고 해서 자기 생명을 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지의 극치다. 목숨을 함부로 다루는 것은 하늘의 뜻을 어기는 일이다. 우리에게는 열심히 그 목숨을 살아내야 할 엄숙한 의무와 책임이 지워져 있을 뿐이다. 내 생명을 소중히 다루는 사람만이 남의 생명도 소중히 여기며 사랑할 줄을 알리라. 존엄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새 시대를 열어 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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