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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속에서 희망을, 망할 수가 없다임명흠 동광양중부교회 원로목사
  • 광양경제신문
  • 승인 2019.05.14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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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목숨이 파리 목숨 같다는 말이 이제는 전혀 과장된 표현으로 들리지 않는 때가 있다. 사람의 생명을 해친 범인들은 범죄의 상황을 아주 침착하고 태연하게 재연해 보이기도 한다. 방해가 되어서 죽이고, 시끄러워서 죽이고, 말을 듣지 않아서 죽였다고 떳떳하게 말한다. 돈을 주지 않아서 죽이고, 약을 올려서 죽이고, 빤히 바라봐서 죽였다는 이유를 이유라고 댄다. 어이없는 세상이 되었다. 무서운 세상이 된 것이다.
 

반면에 하루 임금 3만원을 받고 늦도록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 도시락을 싸들고 버스에 흔들리면서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런데 일확천금을 노려 장부를 거짓으로 꾸미고 사람을 속이고 드디어는 살인까지 한다. 살인의 이유는 너무나도 단순하다. 휴가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여자 친구와 놀기 위해서, 사용한 백화점 카드빚을 갚기 위해서, 그리고 도박 밑천을 마련하기 위해서라 한다.
 

이러고도 세상이 망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말세다, 말세다, 하면서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세상이 완전히 망하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이 지상의 도처에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는 가난하고 힘들지만 10년 후, 20년 후의 어느 날에 희망을 걸고 오늘 땀 흘리며 노력하는 그 사람들 때문에 세상은 망할 수가 없을 것이다. 
 

두 개의 신장 중 하나를 떼어서 부모도 아니고, 형제도 아닌, 다만 죽어가는 불행한 이웃에 대한 사랑 때문에 즐거이 헌납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 때문에 이 세상은 망할 수가 없다. 불행한 독거노인들을 찾아가 매주 몸을 씻어주는 그 사람들 때문에 이 세상이 망할 수가 없다. 걸식 아동들에게 매일 수십 개씩의 도시락을 준비하는 아름다운 손길들이 있다. 그 손길들 때문에도 이 세상은 망할 수가 없다. 
 

이름을 감추고 그늘에 숨어서 촛불처럼 자신을 희생하여 빛을 내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 사람들 때문에 세상은 무너지려다가 일어나고, 무너지려다가 다시 일어나 겨우겨우 지탱하고 있을 것이다. 내일도 해가 뜰 것이고, 지구는 같은 궤도를 회전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완전히 절망할 수 없다. 일이 힘들다고 짜증을 내지만 내가 일할 수 있는 것은 건강하기 때문이며, 할 일이 있다는 것은 내가 선택 받았기에 남다른 행운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뛰어다닐 수 있는 팔다리가 있고, 남의 말을 들어줄 수 있는 아량과 두 귀가 있다면 행복한 것이다. 저녁이 되면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축복인지 생각해 보았는가?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집이 없는 사람도 있다. 걱정이 있다는 것은 내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내가 오늘 살아있음에 감사하면 행복하다. 이렇게 생각하면 내가 지불해야 하는 행복의 대가는 너무나 엄청나다.
 

우리는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고 우뚝 일어선 인간 승리자들의 모습을 때때로 볼 수 있다. 이들의 휴먼 스토리는 작은 어려움에도 힘겨워하는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인간 승리자들의 강인한 정신력에 우리가 감탄하고 있을 때, 정작 그들은 ‘사지가 멀쩡한’ 사람들을 한없이 부러워하고 있을지 모른다. 
 

로마의 사상가 키케로가 말하지 않았던가.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고.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절망은 없다’. 세상은 절대로 망할 수 없다고 믿는 희망은 행복이다. 희망 속에 행복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어려운 순간이 온다 해도 끝까지 희망을 붙들고 있기에 행복하다. 행복은 결코 채워 있는 것이 아니라 채워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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