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思母曲을 작곡한 故 서승일 선생과 국사봉 철쭉제前 광양문화원장 김 휘 석
  • 광양경제신문
  • 승인 2019.04.24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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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산노을 질때까지 호미자루 벗을 삼아
                  화전밭 일구시고 흙에 살던 어머니
                  땀에 찌든 삼배적삼 기워입고 살으시다
                  소쩍새 울음따라 하늘 가신 어머니
                  그 모습 그리워서 이 한밤을 지샙니다
                  무명치마 졸라매고 새벽이슬 맞으시며
                  한평생 모진 가난 참아내신 어머니
                  자나깨나 자식위해 신령님전 빌고빌어
                  학 처럼 선녀처럼 살다가신 어머니
                  이제는 눈물말고 그 무었을 바치리까 』

 국민가수 태진아가 부른 노래 사모곡의 노랫말입니다.
나도 문득 문득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나면 어머니 얼굴을 떠올리며 불러보는 나의 애창곡 이기도합니다. 이 노래는 태진아가 불렀지만 작곡은 우리시 옥곡면 출신 서승일 작곡가가 작곡한 300여곡의 노래 중 하나입니다. 선생은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의 여러 제자들은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태진아입니다. 가수 태진아는 서승일 선생에 의해 발굴되고 길러진 가수라고 합니다.
 어느 날 선생이 서울 어떤 음식점을 갔는데 그곳에서 태진아를 만나고  혼자 노래를 하고 있는 것을 본 선생께서 소질이 있어 보인다 싶어 자신을 소개 하면서 꿈이 있으면 음악실에 오라고 했더랍니다. 얼마 후 태진아는 선생의 음악실을 왔고 사제의 인연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때 선생께서 지어준 예명이 태진아였습니다.  당시 가장 유명한 배우 태현실의 "태"자와 잘 나가는 가수 남진의 "진" 라훈아의 "아"를 따서 지어준 이름이라 하였습니다. 태현실, 남진, 라훈아처럼 크게 이루라는 선생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이미 인터넷상에 소개된 내용이기도 하지요.

선생의 어린 시절은 한마디로 너나 할 것 없이 보편적인 가난의 시대였고 그 가난을 피해 무작정 상경하고 돈 버는 일에 열심이었지만 돈벌이하고는 거리가 먼 음악에 선생은 인생을 걸었습니다.  지난 20일 옥곡 면민 광장에서 선생을 추모하는 제1회 서승일 가요제가 있었고 지역민들의 반응과 행사의 성공 여부가 궁금하여 참석해 보았습니다. 오후 여섯시 반부터 시작된 행사장에는 저녁밥도 잊고 지역의 지도자 어른들과 청장년 면민들이 자리를 메우고 재미있게 가요제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서울향우가수 김재실의 “김”이라는 태인도 김을 소재로 한 노래도 있었고 서승일 선생의 따님이 가야금 연주도 해주었습니다. 예선을 거쳐 본선에 올라온 14명의 가요제 출전자들도 프로가수 못지않은 노래 실력을 과시했습니다. 지나가던 관광객 한 부류도 무대 앞까지 나와 정체불명의 춤으로 분위기를 함께 해주었습니다. 국사봉 철쭉제와 함께 진행된 가요제는 새로운 형태의 지역축제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자연 자원과 문화 자원을 잘 부각시켜 지역의 자긍심으로 승화 시켜 준 시범적인 행사였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면서 한 발짝 한 발짝 발전해 가는 것 같습니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내년에는 더 많은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 속에 사모곡의 의미를 공감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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