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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꽈배기로 희망을 튀기는 남자노랑고래 대표 정진충
  • 홍봉기 기자
  • 승인 2019.04.02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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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중학교 때는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20대 총각 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홀로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가 않았다. 그래도 무슨 일이든 해야 했기에 잠시 부산에서 철물점을 하고 있는 둘째 형님 댁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결혼을 한 후에는 이일저일 손을 댔지만 변변치 않았다.

자본이 없는 상태에서는 마땅히 할 게 없었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직업이 고물상이었다. 처음엔 낯설고 어색했지만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인들 못하겠는가, 하는 심정으로 시작했다. 그가 고물상을 하게 된 계기는 후배가 운영하는 건설사에서 일을 봐주면서부터였다. 남들에게는 고물로 보이던 물건이 그의 눈에는 보물로 보였던 것. 그 때부터 고물상 상호를 믿음고물상으로 짓고 밤낮으로 일에 매달렸다. 가끔은 오해도 받았다. 

그러나 그의 가슴에는 희망이 숨 쉬고 있었다. 희망은 어떤 어려움도 꿋꿋하게 버티는 힘이 되었다. 순천에 아파트도 장만했다. 그러나 예기치 않는 건강문제에 봉착, 고물상을 접어야 했다. 한쪽 눈에 이상이 생긴 것. 그는 가까운 병원을 찾았다. 그래도 차도가 없자, 더 큰 병원으로 갔다. 그랬더니 악성종양일지도 모르겠다며 좀 더 치료하면서 지켜보자고 했다.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온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는 교회 장로답게 한숨보다 기도를 먼저 하며 하느님께 매달렸다. 

눈동자는 자꾸 앞으로 조금씩 불거져 나왔다. 수술을 하고 싶었지만, 수술도 너무 까다롭다고 했다. 자칫하면 실명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서울 큰 병원으로 갔다. 의사는 약을 사용해 치료를 해보자고 권하며 “앞으로 힘든 일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고물상도 접어야 했다. 눈앞이 캄캄했다. 다행이 아내가 직장생활을 하기는 했지만 딸이 대학교 1학년에 입학했고 아들이 이제 중 3학년이다. 

어떻게든 본인 형편에 맞는 일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생각한 게 꽈배기 가게를 오픈하는 것이었다. 그는 일단 유명하다는 꽈배기 집을 찾아다니며 발품을 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가까운 순천에 유명한 꽈배기(당시 순엉터리 꽈배기) 집이 있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먹어 본 맛 중 최고였다. 그런데 꽈배기 집 주인은 체인점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설 순 없었다. 그는 계속 문을 두드렸다. 이에 감복한 주인은 마침내 허락을 했다. 

정 대표는 “솔직히 뭔들 못하겠는가. 하는 심정으로 끈질기게 졸랐더니, 체인점을 허락했다”고 말했다. 그는 주인으로부터 꽈배기 만드는 방법과 체인점 운영에 관한 노하우를 전수 받았다. 그리고 드디어 순천 오천지구에 상가를 얻어 순엉터리꽈배기집을 열었다. 생각보다 장사가 잘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순엉터리 상호를 사용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 상호명이 이미 등록이 돼 사용하면 안 된다는 것. 

그래서 다시 상호를 ‘노랑고래’로 바꾸고 날마다 꽈배기를 만들고 있다. 그는 “나는 꽈배기 하나를 만들 때마다 내 가족이 먹는다는 심정으로 만들고 있다. 그래서 최고 좋은 기름과 재료를 선택해서 사용한다. 고객들의 눈과 입맛은 속일 수가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제 그에게 꿈이 있다면 이 꽈배기 집이 장사가 잘 돼,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물질과 마음을 나누는 것이라고. 그는 날마다 꽈배기를 튀기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튀기며 제 2막 인생을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다.
 

홍봉기 기자  lovein29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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