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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의 기억 창고”박동림(순천청암대학교 외래교수)
  • 광양경제신문
  • 승인 2019.03.05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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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설날, 나날이 지워지는 엄마의 기억을 붙잡아 드리기 위해 외가 나들이에 나섰다. 자동차로 30여분 거리에 있는 외가에 가는 중 엄마는 자꾸 물으셨다.‘어디 가느냐’고.... 출발 전 몇 번씩 말씀드렸는데 말이다. 외가 동네 어귀까지는 알고 계셨는데 정작 당신이 태어나서 25년을 보낸 곳을 헛갈려 하신다. (물론 주변이 개발되어 다소 변화가 있긴 했다)

이집 저집 기웃거리고 계셔서 기억 창고 문을 열어드렸다. ‘저기 감나무가 있는 집 아니냐’고.‘맞다, 저 집이다, 잠깐 생각이 나지 않았다! 반색을 하시면서 대문을 밀고 들어가면서 외숙모를 찾으신다. 반갑게 맞아주시는 외숙모를 붙잡고 한 동안 말씀을 하시더니,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산소엘 가자신다. 5분 거리에 있는 밭으로 향했다.

도착해보니 흔적만 보이고 정작 산소는 보이질 않는다. ‘산소가 없어졌다’며 놀라시는 엄마를 안심시켜 드리며‘혹시 산소를 이장하신 것 아니냐’고? 그때서야 ‘그런 것 같다, 그렇지만 장소는 모르겠다’고 말씀하신다. 분명 수십 번을 다녀오셨을 텐데.....

기억 창고가 지워진 엄마에게 자주 있는 일이지만 오늘따라 유난이 마음이 아린다.
우리 엄마는 5년 째 치매를 앓고 계신다. 치매(dementia)라는 말은 라틴어에서 유래된 말로써 ‘정신이 없어진 것’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치매는 정상적으로 생활해오던 사람이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뇌기능이 손상되면서 기억력, 언어능력, 시공간 파악능력, 판단력 등의 인지기능이 지속적이고 전반적으로 저하되어 일상생활에 상당한 지장이 나타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퇴직을 한 후에도 치매 관련 강의를 위해 한 달에 2-3회씩 상경을 한다. 현장에서 치매환자를 돌보는 요양보호사들에게 강의를 하기 전 늘 이렇게 묻는다. ‘여기 선생님들 중 치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분들 계시냐고?’아무도 자신 있게 대답을 하지 못한다. 나 역시 자신이 없다. 그리고 이렇게 끝을 맺는다. ‘새로운 기억 만드는 것보다 지금껏 가지고 있는 기억이 지워지지 않도록 노력하자고’ 엄마는 3남매 중 큰 딸인 나를 어려워하신다.

어린 나이에 품에서 떠나 서울로 유학을 보내선지 늘 손님처럼 대하신다. 사실 엄마와의 애틋한 기억이 별로 없다. 서울에서 오랜 공직생활을 하고 퇴직하고 귀향을 결정한 이유도 엄마와 동기간의 아름다운 기억을 쌓고 싶어서기도 하였다. 그런데 엄마의 머릿속에 있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기억들이 지워지고 있다.

머지않아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날이 올 것이다. 많은 치매환자와 가족들을 간호하면서 그들의 고통은 담담하게 받아들였는데, 우리 엄마의 기억 소실은 왜 이렇게 받아들이기가 어려운걸까!

‘00여사’문구가 뜨는 전화기를 보면서 아직은 우리 엄마가 큰 딸을 기억하고 전화를 하시는구나 하면서 안도의 숨을 내쉰다. 지난 주 일요일 교회에서 만난 이후 이번 주 내내 전화기에 ‘00여사’가 뜨지 않는다. 나는 오늘도  전화번호를 누를 때마다 앞서는 두려운 마음을 다잡으며‘00여사’의 기억 창고 문을 두드린다.

‘여보세요? 내가 누구게요?’전화기 너머 반가움이 가득 실린 목소리로 ‘누구긴, 우리 큰 딸이지!’가 아닌 ‘누구세요? 누군지 잘 모르겠는데요!’라는 소리가 들리면 어쩌나! 허지만 어찌하리, 그렇더라도 별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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