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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씨앗 멘토링고려대학교 철학과 이영은   
  • 광양경제신문
  • 승인 2019.01.08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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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하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그 말을 다시 한 번 믿어보고 싶어서 몇 자 적어 보려 한다. 나는 불모지에서 자랐다. 척박한 자갈밭을 맨손으로 개간해야 했다. 하다못해 운동장의 잡초를 뽑을 때에도 장갑이 없으면 손이 엉망이 되기 십상이다. 나는 씨앗을 심기 위해 자갈부터 골라내야 했다. 그래야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생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막상 학교에 진학했을 때,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주어진 하루를 어떻게든 살아 내는 것도 벅찼다. 꿈도 꿀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자를 위한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는 수시 진학률 99퍼센트의 지방 일반고였다. 나는 우여곡절 끝에 수능에서 전과목 1등급을 받았다. 결과는 빛났고 값졌다. 그러나 결과만 가지고 ‘원래부터 늘 잘하던 학생’이라고, ‘나’는 결코 될 수 없다는 거리감의 인식을 주고 싶지 않았다. 나는 오랜 시간동안 헤맸고, 여기저기 부딪혔다. 선대가 닦아 놓지 않은 길을 개척했다는 타이틀은 결과를 창출해 낸 후에야 붙을 수 있는 말이었다. 내가 걸어온 길이 나만 걸을 수 있는 길로 황폐해지는 걸 원치 않았다. 후배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인 동생부터 직접 가르쳤다. 기본 공부 습관 및 태도부터 바로잡으려 노력했다. 흔한 학원 하나 다닌 적 없는 나의 동생은 나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었다. 엉망인 글씨, 정리가 되지 않은 노트, 구멍난 기초 개념. 토대 없는 자가 자라나는 게 얼마나 힘든지 겪어봐서 알았다. 

나의 수업은 혹독했다. 사소한 개념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를 만 하겠다 싶은 건 집요하게 물어봤다. 수업을 하면 동생은 곧잘 울곤 했다. 대답하고 싶어도 아는 게 없었고, 이해는 했던 것이 입 밖으로 구체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포기하고 싶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물어봤다. 동생아, 너는 공부가 하고 싶니. 난 네가 하고 싶지 않다면 시키지 않을 생각이다. 그럴 때마다 동생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그래도 하고 싶다고 답했다. 가르치지 않을 수 없었다. 배움에 목마른 학생에게 내가 겹쳐 보였다. 갓 돋아난 나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미안한 무능력자가 되지 않으려 필사적이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 다녔다. 혹시 당신도 내가 필요하진 않을까 해서.

방학 때마다 모교를 찾았다.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조언과 이야기가 한가득 쌓였으니 자리 좀 만들어 주십사 부탁했다. 남에게 무언가 부탁하는 걸 어려워하기를 타고났으나 그에 굴하지 않고 싶었다. 어렵게 얻은 자리에서 내 이야기들을 들려주며 생각했다. 단 한 명에게라도 내가 불을 밝혀 주고 싶다고. 척박한 환경에서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고 싶은 단 한 명이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면 나는 언제든 말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 준비를 하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

올 겨울 방학 1,2월간 하고 싶던 일이 있었다. ‘작은 씨앗 멘토링’. 나는 지금껏 과외로 학비를 마련했다. 내가 노력한 대가로 사는 법을 스스로 익히는 중인 셈이다. 나의 가르침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어 기뻤다. 그러나 학창 시절의 나는 과외를 받지 못했다. 그럴 형편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상황에 놓였을 아이들에게도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각 과목 공부법, 계획표를 작성하는 법, 기타 입시에 있어서 도움이 될 수 있는 조언들을 주고 싶어 오랜 시간 전부터 멘토링을 기획했다. 선생님도 소수지만 모였다. 지도할 내용은 갖춰진 지 오래 되었다. 그러나 학생들이 모일 장소를 구하지 못했다. 여기는 마땅한 스터디룸도 없기 때문이다.

모교에 멘토링 문의를 위해, 강연 문의를 위해 전화를 해 보았다. ‘학생들에게 물어 보고 수요가 있으면’ 나를 부르겠다고 하셨다. 몇 달 전 연락을 해 본 바에 의하면, 다음 여름까지는 멘토링 계획이 아예 없다고 한다. 나는 그 연락을 받고 목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했다. 나는 도움이 되고 싶고, 내 이야기를 들려 주고 싶고, 나설 준비가 되었는데 이대로 내가 잊히지는 않을까. 때를 놓치게 되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일주일에 두 번, 광양읍에서 아이들과 만날 수 있는 공간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까. 멘토링이 성사되기 위해서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에 부딪혔다. 공부는 또한 학생의, 사람의 문화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입시만을 넘어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이루고 싶은 바를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원동력을 부여해 준다. 그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고, 어쩌면 처음으로 세상 속에 섞여 살아갈 준비를 하는 단계로서의 학창 시절에 놓여 있는 청춘들을 돕고 싶다. 열심히 개간한 땅에 씨가 뿌려져야 개간한 의미가 있듯, 나의 사례는 과거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씨앗이 자라나 열매를 맺을 그 순간을 위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걸 할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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