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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인동 출신 최영근 선생 등 제2의 3·1운동 주도‘서훈'신청재야사학자 정재상씨, 호남출신 독립운동가 11명 수형기록 발굴
  • 홍봉기 기자
  • 승인 2019.01.08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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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출신으로 경남 하동에서 1927년 제2의 3·1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돼 옥고를 치른 김무일((1905~?·진상면 섬거)·김태수(1898~?·광양 태인동)·최영근(1906~?·광양 태인동), 정읍출신 김민옥(1912~?·정읍시 덕천면) 선생 등 호남출신 독립운동가 11명의 수형기록을 3·1운동 100년 만에 찾아 정부에 서훈을 신청했다. 

이번 독립운동가 발굴은 재야사학자인 정재상 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이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하동군지역 미발굴, 미포상 독립운동가 찾기 전수조사를 하동군과 함께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뤄졌다. 

문건과 관련해 정재상 소장은 “국가기록원과 국사편찬위원회가 소장하고 있는 ‘형사공판사건부’ ‘집행원부’ ‘일제감시카드’ ‘경상남도 보고서’ 등의 자료에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1927년 하동에서의 제2의 3·1독립운동을 주동한 13명의 수형기록과 호남출신 11명 등 46인의 항일행적이 담긴 수형문건을 찾았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에 발굴한 문건 중에 김무일 선생은 1927년 하동에서 제2의 3·1운동에 가담, 주도적 역할을 했음이 드러났다. 

김 선생은 강대용(당시 41세) 여국엽과 함께 하동·광양지역 등 뜻있는 인사 100여명에게 비밀리에 연락, 하동 장날을 기해 대규모 일제 규탄 시위를 하기로 했다. 악양출신 임성필 노종현을 규탄시위 총 연락책으로 하여 송우복, 조한식 등을 중심으로 빈틈없는 거사 준비를 진행했다.

그리고 광양지역은 김무일(당시 22세)이 직접 나서 거사준비를 진행했다. 거사일은 하동 장날인 1927년 3월 3일로 정했다. 거사에 동참하기로 한 지역인사는 광양군의 김태수(30)·최한원(23)·최영근(22) 선생을 포함 300여명에 달했다. 

시위가 대규모로 확산되자 다급해진 일본경찰은 무력진압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선생은 일본경찰과 충돌, 진압 경찰을 폭행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같은 일로 김무일 등  중심인물 50여명이 일본경찰에 연행돼 모진 고문을 받았다. 그리고 30여명이 재판에 넘겨져 진주법원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요·상해 등의 죄목으로 형이 확정될 때 까지 징역 2년에서 8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또 김태수·최영근·최한원(1905~?·광양 태인동) 선생은 1927년 12월 10일경 광양 태인동에서 조선어로 된 문서에 일제의 불법 감금 폐지와 조선어 사용 확립 조선어 교사 등용 등의 내용을 담은 문서를 광양 일대에 배포한 혐의로 일본경찰에 체포돼 소위 출판법 위반으로 금고 6개월에 집행유예 3년형을 받았다.

최백근(1913~?·광양 태인동) 선생은 1931년 일제의 조선 침탈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문서를 하동군내에 배포한 혐의로 일본경찰에 체포돼 소위 출판법 위반으로 진주법원에서 금고 6개월 형을 받았다. 이번 문건을 분석한 정재상 소장은 “1927년 하동에서 영·호남 출신 1000여명이 가담한 제2의 3·1운동이 대규모로 일어났음을 처음으로 확인했다”며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잊혀진 항일영웅들에 대한 예우에 우리 사회의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봉기 기자  lovein29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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