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나 사람이나 시간이 가면 어쩔 수 없이 퇴색되면서 사라지게 마련이다. 시간은 모든 의미를 집어삼키는 블랙홀과 같다. 당신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모든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빛이 바래지고 만다. 젊음도 성공도 명예도 물질도 시간은 한 순간에 먼지로 만들고 만다.

이 세상에 시간처럼 무자비한 것은 없다. 시간(time)의 뜻이 '자른다'는 의미를 가진 템노(temno)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아니 우리가 '날마다'라고 표현하는 말 역시 그와 맥이 닿아 있다. 24시간의 칼 날(刀)이 날마다 우리 삶을 잘라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의 수명을 조금만 더 연장해 달라고 울부짖어도 시간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시간의 주성분은 ‘냉정함’ 그 자체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시간만이 우주와 인생의 진정한 지배자다. 그 시간이 크로노스(양적인 시간)가 됐건 카이로스(질적인 시간)가 됐건 상관하지 않는다. 신은 시간을 사용해 인간을 다스린다. 대단히 미안한 소리지만 인간은 시간의 간식거리에 불과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처럼 맹목적으로 질주해 오는 시간을 붙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매 순간 의미를 부여하며 사는 것뿐이다. 의미 앞에서는 시간도 당황하게 마련이다. 살아가는 의미를 가질 때 우리는 시간의 한계와 무료함을 극복할 수 있다. 이제 12월도 보름 남짓 남았다. 이 시간만이라도 알차게 보낸다면 그나마 한숨과 후회를 조금은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홍봉기 기자  lovein29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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