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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빵만으로 살지 않겠다고려대학교 철학과 이영은
  • 광양경제신문
  • 승인 2018.12.04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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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하지 않은 지 오래된 블로그에 알림이 떴다. 메일을 한 통 보냈으니 확인을 바란다는 연락이 와 있었다. 메일에는 150만 원의 대가를 치르고 나의 블로그를 홍보용으로 사용하고 싶다고 적혀 있었다. 거금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나의 계좌도 두어 달을 버티기엔 빠듯한 참이었다. 이번 학기에는 지출할 일이 많았지만 1학기 때 생활비 장학금을 받았으니 이번 학기도 받겠단 생각에 크게 부담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때가 되어도 기대하던 소식은 오지 않았다. 그러자 내 마음은 평안을 잃었다. 

혹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150만 원이면 남은 학기도 금전 걱정 없이 먹고 싶은 걸 먹을 수 있고, 아껴 쓰면 방학 때 일하느라 한 번도 간 적 없던 여행도 다녀올 수 있다. 즉 마음이 여유로울 수 있었다. 블로그를 판 사례가 있나 포털 사이트에 검색을 해봤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아이디를 빌려주는 것은 곧 개인 정보를 타인에게 공유하는 행위이며, 혹여 구입한 사람이 법을 위반하는 행위를 하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내 몫이 된다는 내용을 보았다. 글을 읽으며 나를 옭아매는 생각은 ‘그래도 팔고 싶다’였다. 상대를 잘 알아보고 사기 업체가 아니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막상 연락을 보내려 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는 고향에 갈 때 마다 꼭 선물을 한두 개씩 들고 간다. 부모님 드릴 것, 동생 줄 것, 제자들 줄 것들을 챙긴다. 그에 들어가는 비용은 내가 노동해서 번 값진 돈이었고, 나는 선물을 주는 것 자체만으로 기쁨을 느꼈다. 예상치 못했던 것에 반겨하는 이를 보면 나 또한 기뻤고, 상대의 행복이 나의 노동의 대가이기도 했다. 늘 흠잡을 곳 없는 멋진 딸과 언니가 되고 싶었고, 실로 그러했음에 살아갈 이유를 얻었다.

내가 노동을 하지 않고,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돈을 벌면 나는 그것을 소비하며 전처럼 순수하게 행복해할 수 있을까. 내 자신에게 떳떳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이 물음에 답을 하지 못했고 매 끼니마다 씹는 것은 모래알 같았다. 차마 어디다 물어볼 수도 없었다. 오로지 나의 마음이 결정해야만 했다. 내가 사랑한다고 말하던 자유가 이토록 고통스러운 통증을 유발한다는 게 믿기지 않을 지경이었다.

단순히 법을 위반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괴로운 게 아니었다. 막상 내 자신에게 떳떳하지 못할 짓을 다름 아닌 내가 한다면 백날 책을 보고, 훌륭한 수업을 듣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내 양심에 채찍을 후려갈기는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는 욕망에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모든 행위는 모종의 원인[因]이 되어 반드시 그에 의한 결과[果]를 낳는다고 본다. 즉 행위는 씨앗인 셈이고, 이 씨앗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가 때가 되면 발현한다. 선한 행위를 하면 선한 열매가 맺히고, 선하지 않은 행위를 하면 고통의 열매가 맺힌다.

이때 행위는 단순히 신체적 행위만을 칭하지 않는다. 행위에는 신[身](신체적 행위), 구[口](말하는 행위), 의[意](생각하는 행위)가 있다. 각각의 행위들은 신업[身業], 구업[口業], 의업[意業]을 낳는다. 실천하지 않은 ‘의도’도 사라지지 않고 반드시 업을 낳는다. 

나의 양심에 어긋나는 행위일지언정 감내하겠다는 생각은 실천으로 옮겨지지 않았으나 사라지지도 않았다. 나는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살다 보면 가끔 유혹에 이끌릴 때가 있다. 그것이 정의로운가에 대한 여부는 이따금 중요하지 않다.

첫 번째 화살은 누구나 맞는다. 즉 외부 대상이 나에게 닿았을 때 누구에게나 마음의 촛불이 켜진다. 기쁨의 촛불, 슬픔의 촛불 등 마음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촛불이 있다. 그 중 욕망의 촛불에 불이 붙으면 그것은 번지기 쉽다. 특히 물질적인 욕망이 그러한데, 왜냐하면 무언가를 가져도 그에 만족하지 않고 더 가지고 싶어 하기 십상이고, 가진 것에 만족하는 것보다 갖지 못한 것을 원하는 것이 욕망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외부 사건에 반응하지 않고, 욕망 자체를 느끼지 않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불을 적절히 사용하면 그것은 살아갈 힘이 되어 주지만 내버려 두면 온 마음을 휩쓸고 일상을 위태롭게 만든다. 내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은 불을 잘 다스리는 것이다. 때로는 과감하게 끌줄도 알아야 한다. 

‘자유는 빵을 주지 않는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지만, 먹고 살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르면 이상은 효력을 잃는 법이다. 나는 어느 극단의 상황에도 속해 있지 않았고, 희끄무레하게 비치는 경계 위를 끊임없이 넘나들며 무엇을 위해 살 것인지를 결정해야만 했다. 

매 순간은 판단과 선택의 연속이다. 살아가며 어려움을 겪다 보면 옳지 못한 것에 고개가 돌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내 삶에 내가 떳떳하지 않으면 다른 것도 똑바로 바라볼 수 없게 된다. 반복의 고리를 끊도록 안간힘을 써야 한다. 나에게 부끄러움은 공상적 감정이 아니었다. 온 일상을 지배하는 생생한 감각이었으며 겪어내야 할 시험이었다. 아프게 박힌 가시가 상징이 되어 다시 돋아났을 때 양심의 무게를 견뎠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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