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앞 도로변에는 은행나무 가로수가 있다. 이제 늦가을로 접어들어 날씨도 쌀쌀하고 노랗게 물든 은행잎은 하나 둘 바람에 흩날리며 가을남자들의 가슴을 쎄하게 만든다. 동구 밖 밭에는 지난여름 무더위가 한 풀 꺾일 때쯤인 처서 무렵에 심은 무 배추가 통통하고 실하다. 

 내가 어릴적에는 할머니께서 시장에서 무 배추씨를 사오거나 지난해에 무 짱다리 심어서 종자를 받아 뒀다가 처서 무렵에 파종하여 겨울의 초입에 김장을 하고는 하였다. 나는 산중이 고향이라 겨울에 반찬은 김치와 시래기 된장국이 항상 빠지지 않았다. 노고단 찬 바람이 섬진강 타고 우리 동네까지 몰아쳐도 연 띄우고 팽이(우리는 뺑오리라 그랬다) 치고 놀다가 해 저무는 줄도 모른다. 해가 뉘엿뉘엿 별봉산 품으로 넘어 갈 즈음이면 집집마다 굴뚝에 하얀 연기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골목마다 된장국 끓는 구수한 냄새에 시장기가 팍 돈다. 

 온 종일 동네 쏘다니며 놀다가 야단맞을까 눈치 보며 쭈볏쭈볏 집에 들어서면 할머니와 어머니는 배추포기를 쪼개고 무 뿌리를 깨끗이 씻어 커다란 다라 여러개에 한가득 쌓아 소금물에 간을 한다. 저녁에는 무 당근 양파 파 등을 다듬고 채를 썰어 밤새 양념 재료를 준비하고 다음날 고춧가루에 젓갈이며 찹쌀풀을 쑤어 함께 잘 섞고 버무려서 간해둔 배추와 무로 겨울철 반찬 김치를 담궜다. 

 배추포기에 양념을 바르고 속을 넣는 엄마 옆에 다가가 “엄마!! 아~~”하면 엄마는 노란 배추 속잎 한 장을 김장양념 듬뿍 발라 둘둘말아 입에 넣어주면 입가에 고춧가루 묻은 줄도 모르고 볼이 미어져라 한입 먹을 때 그 행복함 이란....... 요즈음은 굴도 넣고 새우도 넣고 보다 다양한 재료를 넣어서 김장을 담그니 맛 또한 다양하다. 

 요즈음은 젊은이들이 대부분 도회지로 나가 살기 때문에 김장 안하는 집도 많지만 시골에 아직 부모님이 계시는 집이면 정성스레 가꾼 무 배추에 출가한 딸이며 객지에 사는 아들 며느리까지 모여서 김장을 담그느라 북적댄다. 

 이렇게 담는 김치는 우리의 한해 겨울을 나는 중요한 밑반찬이기도하지만 추운 겨울날 삶아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노란 고구마에 잘 익은 김장김치를 착 감아 한입 베어 물면, 왜 그리 뜨거우면서도 맛있는지. 도회지에 사는 사람은 이 맛을 알까. 날씨가 추워지고 김장철이 다가오니 어린시절 어렵게 살면서도 정 넘치게 살던 시골 살이가 더 생각난다.  지금 시골에 살아도 그때 감성이 살아날까? 

광양경제신문  webmaster@genews.co.kr

<저작권자 © 광양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