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쓰는 것도 오랜만인 것 같아. 집에 새로운 고양이들이 생겼다며? 생각나서 편지지도 야옹이로 준비해봤어. 귀엽지? 정말 순식간에 시간이 흘러간 것 같아. 나의 대학 2학년 시절도 얼마 남지 않았고 짧은 순간들, 하루들을 보내며 많은 일들을 겪었어. 300여명의 사람들 앞에 서보고, 박수갈채를 받고, 크게 아프기도 했다가, 실수도 하고.

예전에는 아빠에게 많이 의지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있는 범위가 많이 줄어든 것 같아. 지나고 나서야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다고 말을 하게 되었어. 아빠도 그랬을까? 유달리 혹독했던 여름을 겪으며 나는 작아지길 거듭했어. 그럴 때마다 아빠는 끊임없이 나를 인정해줬잖아. 나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는 동생 학교 한 번 데리러 가는 것도 큰마음을 먹어야 하는데. 나도 엄마, 아빠처럼 누군가의 보금자리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딱히 마음 나누는 이 없이 살았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 생각했어. 그러나 좋은 인연들도 많이 만났어. 서툴러도 웃으며 다독여주시는 롤모델 이승환 교수님과 석영중 교수님. 내 강연을 봐주고 힘들고 지칠 때 내게 손을 내밀어주는 친구. 관계에 서투르고 다가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나에게 따뜻한 대우를 해주는 동아리 친구. 늘 혼자 결정하고 감당해야 한다고만 여겼는데. 몇몇의 어찌할 수 없는 고비들을 견뎌내면, 선물 같은 내일이 있었어.이제 점점 홀로 딛는 법을 익히고 있는 것 같아.? 

나는 같이 걸으며 내게 귀기울여주고 같이 코스모스도 보고 붕어빵도 먹던 그 시절이 생생하기만 한데. 다시는 오지 않은 시절들을 아빠는 잊어도 나는 간직할게. 도스토예프스키는 기억하라고 했거든.어떤 걸로도 위안 받을 길 없는 슬픔이 닥쳤을 때에는 그냥 울으래. 포기하고 싶고, 도망치고 잊고 싶어도 그러지 말래. 환하게 웃던 시절을 간직하고, 그것을 소중히 여기고 지금 현재 나의 삶을 살아가래. 그것이 추억을 보듬는 방식이래.나는 아빠가 없었다면 지금 이곳까지 도래할 수 없었을 거야.불안.

내가 어쩔 수 없는 것들을 나무라지 않아 줘서 고마워.이따금 내가 시들어 갈 무렵 따듯한 햇살과 청량한 바람과 맑은 생명을 선물해 줘서 고마워. 이십여 년간 나를 빚어낸 것들엔 아빠가 있었고, 앞으로 아빠랑 떨어져 있어도, 어디에서 무엇을 하면서도 나를 이루는 것들은 빛을 발할거야. 내가 나를 아끼고 사랑하지 못했을 때. 나이고 싶지 않아 할 때. 나는 나를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몰랐어.

나를 이뤄 준 것들을 돌아보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소중한 삶을 선물해줘서 고마워. 앞으로도 반짝이며 살아갈게. 2018년 큰딸 영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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