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한때 선생님 곁에서 자랐던 영은이에요. 올 여름은 유난히 혹독했어요. 선생님은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오늘부로 과외가 모두 끝났고, 걸어가다 선생님 생각이 나서 펜을 들게 되었어요. 누군가의 삶의 찰나에 생각날 수 있는 사람이 제게도 있음에 감사한 밤이에요.

선생님과 처음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절이 생각나요. 그 때의 전 서툴렀어요. 서투른 사람이었어요. 선생님은 그런 제가 잘못되지 않았음을 일깨워 주셨어요. 전 어쩌면 혼자서 감당해야만 한다는 틀에 제 자신을 밀어 넣으려 했던 듯싶어요. 나누고 싶으나 거절당하는 걸 두려워했어요. 상대는 나를 이해할 수 없으리라 단정 짓고 할퀴어가며 거리를 두려 했어요. 그 또한 잘못은 아니었겠지요. 

잘 크고 있다는 말이 외로운 등을 토닥여 줬어요.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말과 사람이 있잖아요. 저는 여전히 크고 있어요. 졸업한 후로 저는 많은 아이들을 만났어요. 그들의 곁에서, 그들의 속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어요. 
독했던 날에는 저수지 옆에 돗자리를 깔고 누웠어요. 눈물 맺힌 눈으로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어요. 그렇게 감정과 응어리를 하늘과 구름과 바람과 별에 흘려보냈어요.

저는 아이들 곁에서 참고 견디는 법을 배웠고, 가능성을 알아보는 눈을 뜨게 되었어요. 너 또한 부딪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할 줄도 알게 되었어요. 빈 손이어야 다른 무언가를 잡을 수 있잖아요. 전 흘려 보내고 채우는 법을 배우며 살아가고 있어요. 제 삶은 배움의 연속이에요. 

선생님, 저는 살아감에 있어서 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있어요. 다친 이에게는 따스한 온기를, 두려워하는 이에게는 조그마한 격려를, 성장하는 이에게는 활기찬 인정을 줘야 한다고 느껴요. 좋은 것만 보고,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살 수는 없잖아요. 불완전함은 또 다른 저의 이름이었고, 그것을 받아들인 순간 제 세상은 한층 깊어지고 다채로워졌어요.

저를 원하는 사람들이 생겼어요. 저를 좋아해 주고, 저를 필요로 하고, 함께 살고 싶어하고, 제가 간절한 사람들이 생겼어요. 기적은 찰나의 한 줄기 빛이에요. 빛은 사방이 어두울 때 더욱 찬란해지잖아요. 저는 그림자가 짙은 빛이 되고 싶어요. 그게 제가 가야 할 길인 것 같아요. 길을 걷는 이의 자그마한 희망이 되어 주고 싶어요.

선생님이 제게 주신 책 속 끼어 있던 편지 구절이 아직도 생생해요. 너 생각나 샀다. 이 말을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어요. 전 선생님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선생님처럼 정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서로가 걸어온 길을 어떻게 다 헤아릴 수 있겠어요. 그렇지만 전 비추어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선생님 앞에서 처음으로 운 날이 생각나요. 학창 시절을 곱씹다 보면 잊지 못할 순간들이 스쳐 지나가거든요. 행복을 찾아볼 수 없다고 단정짓고 밀어버리기도 했지만요, 아니더라고요. 학교에서 전 살아갈 의미들을 끊임없이 부여했습니다. 내 존재를 인정하는 법을 배웠고, 나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주는 사람들을 만났어요. 굴곡 있는 삶을 원했던 건 아니었지만 지금 저는 살아가길 원하고 있어요. 선생님과 제가 조우하여 흘려보낸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여운은 흐려지지 않고 여전히 제 삶에 배어 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짙어져요. 신기하게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순간들이. 어리던 제가 이만큼 컸어요. 선생님이 제게 그러했던 것처럼, 저도 누군가에게는 잊지 못할 사람이 될 것 같아요. 

전 글을 쓰며 살아요. 독자도 생겼어요. 제 글과 발표가 너무 마음에 와 닿아서 팬이라는 연락도 받았어요. 사람들과 손을 맞잡고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을 전하고 살고 있어요. 제 삶은 선물이에요. 귀하게 여기고 나누며 살아가려 합니다.

잊지 못할 추억의 단편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다른 곳을 딛고 살아가겠지요? 선생님께 삶을 배우고 살아가는 법을 배웠어요. 함께할 수 있음에 행복했습니다.

광양경제신문  webmaster@genews.co.kr

<저작권자 © 광양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