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시 시의회 의장이 되고 나니 최초 여성의장이라는 수식을 하나 더 추가하게 됐다. 누구나 그렇지만 최초라는 수식은 사람을 여간 부담스럽게 만드는 게 아니다. 왜냐하면 최초는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심리적인 압박을 받기 때문이다.

언젠가 세계 인권 위원에서 발표한 여성 인권 순위를 보았는데 우리나라 여성 인권이 북한 여성보다 훨씬 낮은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받았다. 아직도 우리나라 여성들이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미래 사회는 부드러운 여성의 카리스마를 필요로 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사회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농경시대와 제조업 시대에는 남성이 가지고 있는 물리적인 힘을 필요로 했지만 미래는 그런 힘이 아닌 여성적인 부드러움을 필요로 한다는 것. 

그동안 인류의 역사를  이끌어 온 것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수레바퀴였다. 다만 남성 중심의 지배 사회가 오랫동안 이어지다 보니 여성의 일이 상대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여성 역시 남성 못지않은 능력을 발휘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아니 역사를 지배해 온 것은 남성이지만 그 남성을 지배한 것은 여성이 아니었던가. 

때로는 남성보다 더한 카리스마로 세상을 바꾸기도 했다. 누군가 말처럼 만약 조선시대가 여성의 지위를 조금이라도 인정했더라면 일제의 지배도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는데, 일견 일리가 있어 보인다. 우리 역사의 뒤안길을 돌아보면 그림자처럼 묻혀 산 위대한 여인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특히 신사임당이나 허난설헌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아마 잘 모르긴 했어도 우리나라가 일본 보다 먼저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을 것이다.  

내가 광양시 최초 여성 의장이 되자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라는 서산대사의 시 한수가 먼저 떠올랐다. 이 시는 김구 선생님이 좋아하는 시이기도 한데, 힘들 때 종종 나를 붙잡아 주기도 한다. 전문을 옮겨 보면 이렇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눈 내린 들판을 걸을 때에는)不須胡亂行(불수호난행: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걷지 말라)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오늘 걸어가는 나의 발자국은)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뒤에 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그렇다. 모든 인생은 흔적을 남기게 마련이다. 개인이 남긴 흔적은 이력이라 하고 집단이 남긴 흔적은 역사라고 부른다. 세상의 발전은 개인이 남긴 이력과 집단의 역사가 적절히 만날 때 가능하다. 나 역시 광양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될 텐데, 내가 걸어온 이력이 훗날 후배들에게 좋은 이정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의장직을 잘 수행하고자 마음을 먹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오직 시민들 편에 서서 의정활동을 시작하고 마무리하고자 한다. 

정치는 시민들이 하는 것이다. 이것을 혼동할 때 정치인들은 망가지기 시작한다. 물론 협치를 할 땐 해야겠지만,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선을 그을 수 있는 결단 또한 중요한 덕목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시민들을 품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다.

지금 광양시는 크고 작은 많은 상처들을 안고 있다. 선거 후유증 역시 하루빨리 치유해야할 부분이다. 그런 뜻에서 여성 의장이 할 일은 따뜻한 어머니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어머니 마음은 마치 바다와 같아서 모든 것을 다 받아 주어도 상하지 않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바다 해(海)자에 어미 모(母)자가 들어 있는 것도 그런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자고로 노자 선생도 말하기를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의장으로 있는 한은 어머니 같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시민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줄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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