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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세에 세상을 뜬 어떤 사내의 죽음
  • 홍봉기 기자
  • 승인 2018.06.05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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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도 등급이 있다. 황제의 죽음을 崩御(붕어), 왕의 죽음을 昇遐(승하), 제후의 죽음을 薨去(훙거)라고 한다. 종교에서 부르는 방식도 여러 가지다. 천도교에서는 환원(還元)이라고 하는데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간다는 뜻이다. 불교는 입적(入寂),적멸(寂滅), 원적(圓寂), 멸도(滅度)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열반(涅槃)은 석가모니를 비롯한 고승의 죽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개신교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는 뜻으로 소천(召天)이라 하고, 천주교는 착하게 살다가 복되게 마친다는 의미로 선종(善終)이라고 한다. 

금실 좋은 아내가 죽으면 현악기의 줄이 끊어진다는 뜻으로 斷絃(단현)이라 하며, 죄를 지은 사람의 죽음은 物故(물고)라고 한다. 요즘도 종종 누군가를 심하게 나무랄 때는 ‘물고낸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지난주에 친척 동생이 죽었다. 워낙 왕래가 없다 보니 그의 얼굴이 가물가물 했으나 그래도 문상을 가야할 것 같아 장례식장을 찾았다. 그의 아내는 남편 영정 앞에서 하염없이 울고만 있었다. (극한 슬픔 앞에서 언어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가!) 생각하면 누구나 예외 없이 한번쯤은 가야 하는 길이지만, 그래도 49세에 가기엔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목울대가 뜨거워졌다. 

시골출신들이 대체로 그렇겠지만 그도 먹고 살기 위해 용접을 배웠다. 용접은 그런대로 밥벌이가 됐다. 아직 자식은 없었지만, 사랑하는 아내와 미래를 계획하며 알콩달콩 잘 살았다. 그런 그가 감전사를 당해 목숨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그와 친척간이기는 하지만 그를 만난 적이 거의 없다. 의례 그렇듯, 부조금을 부의함에 넣고 그의 영정 앞에 국화꽃 한 송이 받쳤을 뿐이다. 영정 속 그의 모습은 뭐가 그렇게도 좋은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문상을 마치고 나오는데 니체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어떤 이들은 죽은 후에야 비로소 태어난다” 그리고 시인 브레히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잘못 산 인생을 두려워하라“ 고 했는데 자꾸만 그 말이 가시처럼 목에 걸렸다. 


 

홍봉기 기자  lovein29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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