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이 되어라’, ‘남에게 함부로 대하지 말라’ 이 두 말에는 나의 말과 행동이 타인에게 끼칠 영향을 고려하라는 당부가 들어 있다. 왜 그래야 할까? 만약 상대는 내게 그러하지 않을 때도 과연 내가 잘 대해줄 수 있을까? 도스토예프스키의 명작『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도 이와 비슷한 고민이 나온다. 

‘나의 인생을’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간호사를 떠올려 보자. 간호사의 보살핌이 환자의 치유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환자는 자신을 치료해 준 사람들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그런데 고마워하기는커녕 되려 간호사에게 짜증을 부리고 배은망덕하게 굴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간호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를 치료해줘야 한다. 상대가 나에게 상처를 주더라도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간호사를 꿈꾸는 소설 속 그 여성은 자신 없어했다. 그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남을 돕고 싶어하는 마음을 유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망설임에 괴로워했다. 나는 이 구절을 몇 달 전에 읽었다. 지금까지도 명쾌한 답을 생각해내지 못했다. 왜 인정받고 싶어하고 ‘내가 행했던 것처럼 상대도 그러해 주기를 바라는 것일까?’ 그러지 않으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처럼 똑같이 상처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생긴다. 이 생각 자체가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그러나 나는 이 생각마저도 괴로웠다. 바람에 섞여 흔들릴 때마다 무언가를 탓하고 싶은 마음이 솟아나는 게 괴로웠다.

나로 인해서 타인이 속상해하는 걸 겪을 때마다 그것은 나의 뇌리에 박힌다. 잘 사라지지 않는다. 몇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선명한 기억도 있다.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 될 것을 분별하고 내가 해야 할 도리를 다 하는 게 공부인 것 같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그런데 분명히 ‘분별’은 나를 아프게 할 때가 있다. 해야 할 걸 아는데도 그러지 못할 때. 잘못했음에 눈물흘릴 때 나는 작아지고 여려진다. 그 상태에 만약 누군가 채찍질한다면 타격은 배가 된다. 그러나 따스함이 깃들고 괜찮다는 위로를 받으면 더 단단해지는 것 같다. ‘너 자신을 알라’는 아주 유명한 말이 있다. 소크라테스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아마 소크라테스가 생각하기에 그 말을 들어야 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살피는 데 서투른 사람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나는 죽어서 천국을 갈 수 있을 지 잘 모르겠다. 다음 생에 태어나긴 할지조차 감이 안 온다. 현재의 나에게 내세의 삶은 ‘알 수 없음’이다.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는 이유는 내일을 위해서가 아니다. 나로서 살아가기 위한 당위(當爲)로 여겨진다면 그저 묵묵히 한다. 물론 내 노력이 인정받고 칭찬받는다면 그 날은 무척 기분이 좋다. 인사 한 마디 나누더라도 좋은 일 있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은 날이 된다. 그런데 인정받고 싶어서 내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건 아니다. 전에는 이 둘의 차이를 구분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내가 서투르고 미숙한 점으로 부끄러움을 느꼈을 때 머릿속에 불이 켜졌다. ‘고쳐야 되겠구나’ 실수는 알고 나서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것이 잘못인 줄 몰랐다고 변명하는 것은 내 자신을 ‘알려 들지 않는 학생’으로 못 박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타자에 의한 보상, 대가를 위해 노력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번뜩임이었다. 천국행 열차 탑승 표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절박함, 머물러 있으면 안 되겠다는 찰나의 불꽃이 내 마음에 지펴진 순간 나는 등불을 켠 자가 되었다. 등불의 역할이 무엇인가? 바로 어둠 속에서 헤매던 사람의 앞을 은은히 비춰 주되 눈부시지 않아야 한다. 때로 바람에 꺼질 듯 한 게 당연하다. 움직일 때 쓰기 때문이다. 흔들려 꺼져도 다시금 켜져 빛이 되어야만 한다. 깜깜하고 추운 밤길을 홀로 걸어가야 하는 이는 외롭다. 어디에 있는 무엇일지도 모르는 길을 걸어간다. 가고 나서야 자신이 걸어온 곳이 길이 되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나만의 길은 아니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보이지 않는 짐을 지고 살아간다. 불빛의 세기 차이는 있을 것이다. 투정부리거나 작아지는 게 결코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바람에 흔들리고 어둠이 온 사방을 휩쓸 때 조그맣지만 따스한 등불에 온기를 얻고 앞을 볼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내 마음의 불을 조금씩 지피며 걷고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스스로 되뇌인다. 몇 백 번을 말해도 사실 두렵다. 나는 그 마음 또한 인정한다. 나는 조그마한 일자(一者)이기 때문이다. 조그맣기 때문에 광활한 세상 속 무엇이든 바라볼 수 있고, 조금씩 천천히 나아갈 수 있는 것 같다. 아무것도 쥐지 않은 손을 펴야 바람의 감촉이 느껴진다. 상처는 채찍질하면 더 파이고 낫지 않는다. 맑은 공기와 시원한 바람, 따스한 햇살을 맞이할 때 조금씩 새살이 돋아난다. 흉터는 아물었음을 의미한다. 억지로 밴드로 덮어 두고 나은 척 하지 말 것. 똑같은 아픔으로 다시 덮으려 들지 말 것. 아파서 운 다음 날 부은 눈도 예쁘다고 생각해 볼 것. 이것이 내가 어제를 겪고 오늘을 맞이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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