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병원에서 어머니가 수술을 받을 때 겪은 얘기란다. 진료 과정은 다른 병원과 별 차이가 없는데 의료진이 환자를 부르는 호칭이 낯설게 느껴졌다.  의사가 회진하러 병실에 들어왔는데 그는 팔순을 넘긴 환자를 대 할 때도 ‘박 원사님’, ‘김 여사님’하고 인사를 건넸다. ‘음, 왜 저렇게 부르는 이유가 뭘까?’. 
 

 “환자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으시던대요?” 묻자, 그는 “환자에게서 환(患)은 아플 ‘환’이잖아요, 자꾸 환자라고 하면 더 아파요. 그래서 은퇴 전에 직함을 불러드리죠. 그러면 병마와 싸우려는 의지를 더 굳게 다지시는 것 같아요. 건강하게 일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갈망이 가슴 한쪽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죠”. 라고 답했다. 상대편의 아픔을 공감 하면서, 조금이라도 그 아픔을 줄여 보려는 의사의 배려가 담겨 있었다.
 

  지인들끼리 모이면 얼마동안 수다 떠는 일이 허다한 현상이다. 수다를 떠는 동안 무엇엔가 짓눌린 것 같은 마음이 해방을 받은 것 같다는 느낌이다. 수다의 긍정적인 면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수다를 한참 나누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불쑥 예상치 못했던 표현이 튀어나와 듣는 사람에게 상처를 안겨주는 일도 생긴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말 많은 세상에서 말의 성찬 속에서 살고 있다. 그 많은 말들 속에  진정으로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 깊은 얘기를 얼마나 들을 수 있겠는가? ‘대장부일언중천금’(大丈夫一言重千金)이라, 사나이의 말 한마디는 천금의 무게가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세상 어디를 돌아보아도 천금처럼 무게 있는 말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지난 년 말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귀순사건’에서 북한군 병사 오청성 씨를 치료한 이국종교수는 ‘당시 귀순 병사는 마치 깨진 항아리(Like a broken jar) 같았다’고 말했다. 북한 병사의 과다출혈로 인한 치명적 상태를 놓고 이교수가 CNN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의 언어는 사람들의 뇌리에 그림을 그려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소개 할 때도 ‘칼을 쓰는 사람’으로 말했다.

  이 교수는 2011년에도 소말리아 해적에게 총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을 수술해 ‘아덴만 영웅’으로 불리며 유명세를 탔다. 이 교수의 그림언어는 소령 복장으로 정점에 이른다. 대통령 앞에서 해군 정복을 입고 “소령 이,국,종”이라고 관등성명을 복창 했다. 대통령의 가슴을 흔드는 복창이었다. 송 국방장관에게는 거수경례를 했다. 그의 그림 언어는 절묘했다. 상식의 허를 찔렀다.

  전국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기에 모금 운동이 벌어졌다. 며칠 새 “권역외상센터” 지원에 20만 명이 참여했다. 예산국회는 여야 없이 그의 뜻을 받들어 212억 원의 증액으로 화답했다. 오천 원에서부터 수백만 원에 이르기까지 지원금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추운 겨울이 갑자기 따뜻해졌다. 이교수의 소통 언어의 힘이었다. 이렇듯 말 한마디, 언어의 힘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

    “부주의한 말 한마디가 싸움의 불씨가 되고, 때에 맞는 말 한마디가 긴장을 풀어주고, 사랑의 말 한마디가 축복을 가져온다.” 

  예부터 ‘말’ 한마디로써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했듯이, ‘말’이란 이렇게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어느 자리, 어떤 환경에 놓이던지 서로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 할 수 있는 좋은 말을 구사하는 지혜를 터득할 필요가 있겠다. 우리가 바라는 행복한 세계는 멀리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날마다 우리의 입술을 어떻게 지켜 나가야 하느냐에서 시작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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