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삶을 함부로 낭비할 수 없는 이유한성수 번역가
  • 광양경제신문
  • 승인 2018.04.03 17:33
  • 댓글 0

 

누군가 내게 삶을 한마디로 정의 내려 보라고 한다면 ‘삶은 럭비공과 같다’고 말하겠다. 아무리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도 현실은 늘 럭비공처럼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인간들이 신을 숭배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조금이라도 극복할 수 있는 그 무엇이 필요했던 것이다. 

아마 이런 이유 때문에 인간이 호모 思피엔스로 진화되었을 것이다. 인간들은 어떻게 하든 불확실한 미래를 좀 더 확실하게 만들고 싶어 온갖 문명을 발전시켜 왔지만, 여전히 나아진 건 없고 오히려 삶만 더 복잡해지고 말았다. 어쩌면 이게 인간들이 가진 태생적인 한계인지 모른다. 아니, 이 세상에 편찬된 모든 책을 다 읽고 또 깨닫는다고 해도 내일 일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 감옥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박근혜씨 역시 자기 처지가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지난해 운명을 달리한 탤런트 김주혁도 마찬가지다. 그가 이처럼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를 좋아하는 팬의 한사람인 나도 아직 그의 죽음이 실감나지 않는데 하물며 그와 가까이 지냈던 사람은 두말 할 것도 없을 것이다. 아니, 그와 친분이 있는 사람은 지금도 그의 온기를 마음에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참으로 애석하게도 이게 바로 삶이요, 현실이다. 죽음이라는 손님은 부자와 가난한 자를 가리지 않고 불쑥불쑥 찾아오는 가장 무서운 불청객이다. 생각하면 참으로 무례하고 기분 나쁜 일이 아닐 수 없겠지만 문제는 일방통행이라는 데 있다. 그래서 아무도 거부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일찍이 간파한 원감 충지(圓鑑 沖止, 1226-1292)는 이런 시를 읊었다. 浮生正似隙中駒 (부생정사극중구:뜬 인생 참으로 쏜살 같이 지나가니)得喪悲歡何足數(득상비환하족수:얻고 잃음 슬픔 기쁨 어이 족히 헤아리랴.)君看貴賤與賢愚(군간귀천여현우: 그대여 보아라! 귀천(貴賤)과 현우(賢愚)를 가리잖고) 畢竟同成一丘土(필경동성일구토: 필경엔 다 같이 무덤 속의 흙이 되고 마는 것을) 

이 시를 가만히 음미하고 있으면 처음엔 허무가 가슴을 짓눌러 오지만 좀 더 반복해서 음미하면 허무를 넘어 삶의 의미를 하나 발견하게 될 것이다. 솔직히 제 아무리 날고 긴다 하는 사람도 필경에는 무덤의 흙이 되고 말 것이다. 아니, 당신이 현재 그처럼 愛끼고 소중히 여기는 이생의 모든 것들도 결국엔 허무하게 사리지고 말 것들이다. 그런데 말이다, 여기에 바로 삶의 소중한 역설이 깃들어 있다. 

이처럼 허무하고 짧은 인생이기 때문에 삶을 함부로 낭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당신이 아등바등하며 붙잡고 있는 것 역시 뜬 구름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다. 다만 내 것이라는 착각과 착시와 착란에 잠시 빠진 것뿐이다. 이런 사실을 확실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매사가 여유롭고 또 자유로울 것이다. 왜냐하면 집착에 자기를 가두지 않고 매 순간을 감사하며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마무리하고 잠시 창밖을 내다보니 며칠 전만 해도 나무토막 같던 가지에서 예쁜 꽃들이 피었다.

광양경제신문  webmaster@genews.co.kr

<저작권자 © 광양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양경제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많이 본 뉴스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