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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과 사의 갈림길에서진동석 장로    
  • 광양경제신문
  • 승인 2018.02.27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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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짧은 한 생애를 돌아보니 비록 순식간에 지나가기는 했지만 그 짧은 시간 속에 정말 많은 일들을 경험했다. 물론 경험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개인적인 것이므로 일반화 한다는 게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그런 경험을 함께 공유하고 싶어 질 때가 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경험이 풍부하다는 것이고, 그 경험이 때론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때도 있는 법이니까. 이는 마치, “이곳으로 가면 위험하니 돌아가시오” 하는 안내판을 보고 안전한 곳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내 청춘의 가치관이 확 바뀌게 된 것은 베트남 전쟁에 참여하면서부터였다. 사람이란 어떤 극단적인 상황에 처하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절대자의 힘을 빌리게 되는데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베트남 전투에 자원하게 된 것은 고참들의 매를 맞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만 해도 구타는 하나의 일상이었다. 베트남 파병 전에 3개월 고된 훈련을 받고 나자 드디어 부산 제 3부두에서 나를 태운 배가 베트남을 향해 출발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배에서 바라 본 내 조국이 점점 멀어지면 멀수록 내 눈물의 양도 많아졌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전쟁터에서 나가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누군들 맨 정신으로 버틸 수 있겠는가. 그 순간 나는 침대에 무릎을 꿇고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를 했다.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유신론자가 된다는 말이 있는데, 나는 이 말이 보편적인 진리라고 생각한다. 겉으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도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두려움이 한쪽 마음을 지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월남에 도착하고 1주일 또 적응 훈련을 받는데, 가장 견디기 힘든 게 바로 모기였다. 모기 공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손톱에 피딱지가 질 정도로 몸을 긁어 댔으며 또 옷을 홀랑 벗고 나무에 온몸을 문지르기까지 했다. 그런데 운이 좋게도 내가 최종 배치 받은 곳이 포병대대였다. 당시 포병대대를 호텔이라고 불렀는데, 그 이유는 바로 모기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나를 그곳으로 인도해주셨다고 믿는다. 사람의 일생을 가만히 돌아보면 보이지 않는 손길에 의해 인도 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보통 사람들은 운명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믿는다. 아무리 사람들이 똑똑하고 영리하다고 해도 결국은 생과 사의 문제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생과 사의 문제를 모르는 이상, 그 사람은 평생 헤매며 살 수밖에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당시 내가 월남에 파병 나가 있을 때, 당시 태인제일교회를 건축하고 있었는데, 얼마 되지 않는 돈이었지만 건축에 보태 쓰시라고 돈을 부처 드리기도 했다.  

이제 70중반을 넘긴 이 나이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방황하고 헤매는 젊은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다는 것이다. 하는 사업마다 계속 꼬이는 사람이나 이런저런 삶의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거들어 새로운 길을 안내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들에게 내가 살아오면서 경험한 여러 가지 일들을 들려주고 또 삶의 문제를 함께 해결했으면 싶은 게 나의 마지막 소원이다.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함께 나누는 것도 아름다운 선행이라 생각한다. 책이나 지식을 통해 배울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경험인데, 남은 나의 일생은 그 경험을 함께 나누고 싶다. 경험도 소중한 사회적 자본의 하나일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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