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힘들 때 자기를 일으켜 세우는 비망록(備忘錄)이 있을 것이다. 비망록은 말 그대로 잊지 않으려고 중요한 골자를 적어 둔 글을 말한다. 물론 지나 놓고 보면 유치해서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기도 하지만, 그 당시에는 나름대로 절박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비망록을 영어권에서는 memorandum(메모렌덤)이라고 하는데, 아직 정식으로 서명되지 않은 ‘각서’를 말한다. 

각서(覺書)란 상대방과 상호 정해진 사항에 대하여 약속을 이행하겠다는 내용을 서약서의 형태로 작성한 문서로 사안에 따라 법적인 효력을 가진다. 비망록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내게 쓴 글이지만, 쓴 대로 이행하지 않았을 때는 마음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근래 들어 다시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보면서 큰 힘을 받곤 한다. 내게 있어 비망록은 이순신장군의 난중일기와 같다. 도대체 무엇으로 하여금 이순신 장군은 그토록 치열하게 일기를 썼는지 모르겠다. 간혹 삶의 엄살을 부리다가도 난중일기 소리만 들으면 정신이 번쩍 들곤 한다. 이순신 장군은 스스로 '7년불해대(七年不解帶)' 즉 7년 동안 한 번도 허리띠를 풀지 못하고 잠자리에 들었다고 고백하고 있을 정도로 긴장감 속에서 살았다. 그런 와중에 매일같이 일기를 썼다는 그 정신만 봐도 이순신 장군이 왜 100전100승했는지 이해가 된다. 

그는 일기를 쓰면서 나름대로 마음의 비망록을 만들어 갔던 것이다. 일기를 쓴다는 것은 단순히 그날의 사건만 기록하는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이 일기 쓰기를 어려워하는 것 중의 하나는 아름다운 수사법이나 문장으로 쓰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기는 그러기 전에 진실한 마음으로 쓰는 것이다. 

쓰면 쓴 대로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 새해부터는 매일 5줄만이라도 일기를 쓰면 어떨까 싶다. 그깟 5줄,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매일 쓴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만약 쓸 말이 없다면, 내가 좋아하는 시인의 시라도 옮겨 적어 보자. 내가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이순신 장군의 삶에 비유하겠는가. 항상 하는 말이지만 삶의 의미는 밖에서 주어진다기보다는 내면에서 주어지는 법이다. 고로 내면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일기는 쓸 가치가 충분하다고 하겠다. 

일기가 부담스럽다면 비망록이라 생각하고 몇 줄이라도 적어보자. 글 몇 줄 적는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라고 과소평가하지 말고 일단 실천에 옮겨보자. 아니, 하루하루 살면서 글 몇 줄 기록할 만큼의 사건이나 의미가 없다면 그게 어디 제대로 살아가는 삶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새해에는 당신만의 비망록이 풍성해지기를 응원한다. 비망록이 풍성해질수록 당신 내면도 그 만큼 풍성해질 터이니.
 

홍봉기 기자  lovein29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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