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프롬의 <존재의 기술>을 다시 훑어보고 있는데, 곳곳에 밑줄이 그어져 있다. 1996년도에 읽었다고 표기 된 것으로 봐서 그 당시에 나름대로 절박한 일이 있었나 보다. 그의 책은 하나 같이 밑줄을 긋고 싶은 문장들이 많아 오히려 독서에 방해가 될 정도다.

그동안 읽었던 프롬의 책 대부분이 그랬다. 아마 프롬의 책 좀 읽었다는 사람들은 내 말에 쉽게 공감할 것이다. 그를 명성의 반열에 올렸던 <소유나 존재냐>를 시작해 <사랑의 기술> <정신분석과 종교>〈자유로부터의 도피〉〈건전한 사회〉〈자조적 인간> 등은 지금도 사람들에게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다. 

프롬은 인간의 심리와 사회의 상호작용을 깊이 탐구했으며, 문화의 병폐를 고치는 데 정신분석학의 원리를 적용함으로써 균형 잡힌 '건전한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믿었던 학자였다. 조금은 순진한 면이 없잖아 있지만, 그의 주장에 대체로 공감하며 동의한다. 한 때는 프로이트의 영향 속에 있었지만 프로이트가 사회적인 관계망 보다는 모든 신경증을 개인의 무의식에 내재된 성적인 문제로만 환원시키려는 태도에 반대해 스스로 자기만의 길을 개척했다. 

프롬은 개인의 인성을 생물학적 조건뿐만 아니라 문화의 산물로 규정했다. 현대인이 앓고 있는 신경증이나 정신 불안증은 개인의 정신분석 요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 마침내 사회구조의 변혁과 인간의 심리적 해방을 서로 연결 시켜주는 “인간주의적 정신분석”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었던 것이다. 

사실 우리는 날마다 우리 자신을 분석하면서 완벽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을 하지만 사회적 관계망이 워낙 다층적으로 맞물려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갈등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다만, 그런 갈등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길은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는 것 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알면 보인다’는 명제는 정신분석학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문장이다. 

한해를 떠나보내는 이 마당에 ‘나는 제대로 존재하며 살아왔는가?’ 에 대해 반성하는 차원에서라도 <존재의 기술>은 읽어 볼 가치가 충분하지 싶다. 아니, 술집에서 쓸데없는 잡담으로 시간을 죽이는 것보다 이 책 한 권이 훨씬 많은 것들을 깨닫게 만들어 줄 것이다. 프롬은 이렇게 묻고 있다. “산다는 것의 목표는 무엇인가? 인간에게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홍봉기 기자  lovein29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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