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화장실을 ‘통시(通屎)’ 또는 ‘구시’라고 불렀다. 구시(臼屎)는 짐승들 여물통을 말하는데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태인도 사람들은 화장실이라는 의미와 동일하게 사용했다. 그래서 욕을 잘하고 입이 험한 여자를 가리켜 구시댁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아마도 이 말은 구유가 변해서 생긴 말이 아닐까 짐작된다. 사실 구시라는 한자를 차용하게 되면 화장실이 맞다. 시(屎)자가 똥을 뜻하기 때문이다. 더러는 화장실을 통시라고 부르는 데 이 역시 구시와 상통하는 말이다. 통시란 말 그대로 똥(屎)이 장을 거쳐(通) 몸 밖으로 나오는 것을 받는 장소라는 뜻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처럼 짐승들 밥통을 뜻하는 구유와 화장실을 하나로 생각했던 것은 먹는 행위와 싸는 행위를 동일하게 봤기 때문이다. 밥통은 아직 소화되지 않은 음식을 담는 그릇이요, 통시는 소화가 다 된 똥을 받는 그릇인 셈이다. 그래서 예수가 말 구유(말 밥통)에 탄생했다는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크다 하겠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을 살찌우는 영의 양식으로 왔다는 뜻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간혹 나이가 지긋한 시골 동네 어르신들은 지금도 “아무리 말 못 허는 짐승들이라고 밥 본 나시 조라! 독구시 다 다라지겠다“ 라고 말하는 것을 목도하기도 하는데, 이 말은 ”말 못하는 짐승들이라고 해도 먹이를 좀 넉넉히 주어라! 돌구유가 다 닳겠다“ 는 뜻이다. 요즘 누가 짐승을 굶기는 사람이 있을까만, 예전에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정성껏 쇠죽을 써서 먹이기도 했다. 짐승에 대한 대우가 사람 못지않았던 것이다.

특히 소는 가장 중요한 집안의 보물이기에 더욱 애틋하게 여겼다. 농경시대라 더욱더 그랬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자고로 사람이 건강하려면 잘 먹고 또 잘 싸야 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제 구시는 화장실이라는 말로 대체돼 사용되고 있는데, 언어도 시대에 따라 변천해 가게 마련 아니겠는가.

홍봉기 기자  lovein29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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