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모두 철학자요, 문학가다. 비록 훌륭한 작가처럼 멋진 문장을 만들어 내지는 못하지만, 살아가면서 순간순간 느끼는 그 감정이 바로 철학이요, 문학이기 때문이다. 다만 기존 작가들처럼 종이에 옮기지 못하는 것뿐이다.

물론, 문학과 삶의 의미는 다르다. 그 이유는 문학은 관념이며, 삶은 현실인 까닭이다. 하지만 삶의 고단함을 문학과 철학이 어루만져 주지않는다면 삶은 더 비참하거나 쓸쓸해질 것이다. 그나마 우리가 비루(鄙陋)한 삶을 견딜 수 있는 것은 문학과 철학이 제공해주는 언어의 어루만짐 때문이다. 

혹자는 “문학이 밥멕여주냐?”고 냉소를 보내지만, 그 역시 괴롭고 힘들 땐 소주를 입에 털어 넣으며 상념에 잠길 텐데, 그 순간이 바로 문학과 마주 하는 순간이다. 이렇게 보면 어느 누구도 문학을 떠나 생존할 수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하찮은 푸념조차 시의 형식을 빌리면 아름다운 서정시로 탈바꿈된다. 이처럼 문학은 우리가 좀 더 행복한 감정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거들어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좀 더 훌륭한 문인들을 만나기 위해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그 덕분에 유명한 문인을 배출한 지역은 경제적인 효과로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다. 모든 지자체마다 자기 고장 출신의 문인들을 기리는 문학관을 건립하고자 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 문학도 충분히 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눈치 챈 것이다.

국민들의 의식이 높아질 때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게 바로 문화예술 공간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광양시도 문화예술에 점점 더 투자를 늘려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가까운 하동군이나 순천시와 비교해 보면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그러나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르다는 속담처럼 지금부터 우리 지역 문인을 재조명해서 관광사업과 연계한다면 타 지자체 못지않은 저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광양시는 두 가지를 동시에 추진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지역문인들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문학박물관 건립을 추진하는 것이다.

                                                            국내 최고의 동화작가 故 정채봉 

현재 유명한 광양시 근대인물 중에는 작고한 정채봉, 이균영, 주동후, 등을 비롯해 생존해 있는 인물로는 안영. 박혜강 등이 있다. 이들은 중앙 문단에서도 알아주는 문학가들임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물론 광양시조차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동화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고 정채봉은 가까운 순천에서 정채봉문학관을 건립해 관광자원화 하고 있다.

광양학연구소 정회기 소장의 말에 따르면“ 정채봉작가가 유언을 남길 때 모든 유품은 광양시에 기증하라고 했는데, 순천시에서 발 빠르게 정채봉 미망인 김순희 여사를 찾아와 간청하는 바람에 순천시에 유품의 일부를 기증하게 됐다” 는 것이다. 정채봉은 방정환, 윤석중, 이원수 이후 침체된 한국의 아동문학을 부흥 발전시키는 데 이바지했으며, 간결하면서도 깊은 울림이 있는 '생각하는 동화' 시리즈를 샘터에 연재하여 한국에서 성인동화라는 새 장르를 개척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1973년 <동아일보> 동화 부분에 <꽃다발>이 당선되면서 등단하였으며, 이후 월간 <샘터>에서 편집부 기자와 주간, 편집이사 등을 역임했다. 1983년 동화 <물에서 나온 새>를 발표하여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11권의 동화와 7권의 생각하는 동화, 11권의 에세이집과 시집 등 왕성한 작품활동으로 이름을 알려왔다. 특히 <물에서 나온 새>를 비롯하여 1984년의 <오세암>, 1991년에 나온 <생각하는 동화>(전 7권) 등은 모두 300만 부 이상의 판매기록을 남겼을 정도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양시는  정채봉에 대한 평가조차 제대로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혜성처럼 등장했던 소설가 故 이균영
안타깝게 젊은 나이에 타계한 이균영 역시 새롭게 조명할 가치가 매우 큰 인물이다. 그는 소설가이자 역사학자로서 주목할 만한 업적을 남겼으며, 1977년 신춘문예로 등단해 1984년 발표한 〈어두운 기억의 저편〉으로 이상 문학상을 받았다. 사학자로서 13년간의 연구성과를 집대성한 〈신간회연구〉를 1995년에 발표했는데 이는 일제강점기 사회연구에서 좌·우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균형잡힌 시각으로 신간회의 실체를 밝힌 최초의 연구서로서 단재학술상을 수상했다. 이후 〈노자와 장자의 나라〉를 발표했으나 안타깝게도 45세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타계하고 말았다.

하지만 아무리 광양사람이라 해도 아직 이균영 작가가 누구인지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가 이룩한 문학적인 가치가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해 제대로 된 조명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의 생가와 아주 가까운 광양중앙시립도서관에는 이균영 작가에 대한 어떤 설명글 하나도 적혀있지 않다. 이에 비해 가까운 장흥에는 한승원 소설가가 장흥을 알리고 있고 강원도 홍천에는 이외수 작가가 지역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아니, 순천만에는 김승옥 소설가가 사람들의 발길을 불러들이며 순천의 문화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학창시절 이균영과 선후배사이로 아주 친하게 지냈다는 봉강하조나라 김세광 대표는“나는 이균영 선배 때문에 광양을 알았고 지금은 광양에 터를 잡고 살고 있는데 정작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훌륭한 소설가를 배출한 광양이 이균영 선배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못내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이균영 소설에 등장하는 광양읍내 지명만 제대로 복원해도 하나의 문화 아이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외에 현재 문단 안팎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안영례(안영) 소설가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현대문학에 ‘월요오후’로 추천 데뷔했으며, 2002년 소설집 ‘겨울나그네’로 39회 한국문학상을 수상했다. 광양인서리 출신인 안영은 대학교 재학 중 ‘산문시대’ 라고 하는 문학작품을 출판했으며 현재 소설과 시 평론부분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광주문화방송편성부국장을 지낸 故 주동후 작가는 전남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신동아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분에 ‘여름파도’ 당선돼 문단에 이름을 알리며 광양발전에 큰 공을 세웠다. 진상섬거출신인 박혜강은 무크지 문학예술운동에 ‘검은화산’을 발표를 하면서 작품활동 시작했다. 한 때 무등일보에 대화소설 ‘꽃잎으로 눕다’ 등을 연재하기도 했다. 
 

문학관 건립 의지가 중요
문학관 건립 필요성을 들먹이면 가장 우려하는 게 예산이다. 그러나 광양과 가까운 지자체를 둘러보면 이보란 듯이 문학관을 건립해 잘 활용하고 있다. 문제는 광양시의 의지다. 가까운 하동군은 변두리에 이병주 문학관을 건립, 하동군의 문화위상을 높이고 있다. 특히 올해 16회를 맞이하고 있는 이병주 전국학생백일장은 전국적으로 알아주는 백일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병주 문학관은 이병주가 다녔던 북천초등학교 일대에 조성되었다.

문학관 건립을 통해 이병주 문학과 관련된 각종 자료를 수집·전시함으로써 작가의 발자취를 보존함은 물론, 그 문학적 성과를 재조명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하동군은 이 문학관을 통해 ‘이병주 하동 국제 문학제’를 비롯하여 다양한 문화 행사를 개최할 수 있는 구심점이 됨으로써, 섬진강·지리산·다도해가 함께 있어 예부터 삼포지향이라 불린 하동 지역의 문화 자원으로 역할을 톡톡하게 해내고 있다.

문학도 충분히 밥이 될 수 있어
순천문학관은 소설가 김승옥과 동화 작가 정채봉의 문학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만든 곳이며, 주변 순천만과 조화를 이루는 정원형 초가건물 9동으로 건립해 2010년 10월 문을 열었다. 문학관은 김승옥관, 정채봉관, 다목적실, 휴게동 등으로 구성돼 있다. 양 작가의 전시관은 그들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관련 자료를 입체적으로 전시하고 있다.

사실 김승옥은 순천에 가깝다 해도 정채봉은 광양에서 유년과 청소년을 모두 보냈기 때문에 광양이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에서 언급 했듯이 정채봉이라는 타이틀 이름을 순천에 넘겨 준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지금도 늦지는 않았다. 광양시도 문인들 박물관을 건립한다면 그 못지않게 충분한 문화적 가치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매천 황현, 신재 최산두 등 유명 문인들을 한꺼번에 모아서 문학관을 건립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만하다는 게 지역문인들의 입장이다. 개인 이름을 건 박물관 건립이 어렵다면 순천처럼 그 지역 이름을 따도 괜찮다. ‘광양문학박물관’으로 하면 되기 때문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나 <오디세이>는 3천년이 지났지만, 오늘도 그 작품은 사라지지 않고 이렇게 전 세계인이 읽고 있다. 작가는 죽어도 작품은 죽지 않기 때문이다. 문화적 가치를 우선으로 하는 나라는 당시 문호들이 살던 집, 작품 배경지, 작가의 육필이나 유품 등을 귀한 보물로 여기고, 그 보물들을 영구히 보존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를 구경하려고 각양각처에서 찾아온다. 나라의 위상도 높이고 돈도 벌 수 있으니, 일거양득의 효과를 보는 셈이다. 영국인들은 세익스피어 하나를 놓고서도 '인도와 바꾸지 않겠다'고 말 했는데, 이 말은 인도를 무시 했다기 보다는 문학의 가치가 그처럼 크고 위대하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문화 전문가들은 말한다. 문화를 밥으로 바꾸려면 장기적인 프로젝트가 우선 중요하다고. 그렇지 않고 근시안적인 안목으로 문화를 대하다 보면 늘 같은 자리에서 맴돌거나 후퇴할 수밖에 없다고 조언하고 있다. 이처럼 장기적인 안목에서 문화사업을 추진할 때 문화는 비로소 밥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홍봉기 기자  lovein2986@hanmail.net

<저작권자 © 광양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