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 하여 지리산이라고 불렀다는 1,915m 지리산(智異山), 지리산은 1967년 우리나라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되었으며 경남 하동, 산청, 함양, 전남 구례, 전북 남원시 등 3개도에 걸쳐 있는 산이다. 지난 5월 29일부터 31일까지 2박 3일간 5월의 끝자락에 그리운 추억을 쌓고 싶어 친구와 둘이서 지리산 종주 길에 올랐다.

25,5km, 지리산 대장정 종주
종주하기 전에 필수적인 것은 대피소 예약이다. 보통 한달 전 예약이 필수나 연분홍 철쭉을 보자는 제안으로 갑자기 종주계획을 잡느라 대피소 예약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25,5km 거리를 배분하여 하루에 10km 정도 계산해서 연하천, 세석대피소를 예약했다. 여행은 날씨에 따라 크게 작용하는데 우리가 출발하는 날은 흐림이란 예보였다. 집에서 4시 출발, 구례 터미널에서 6시 버스에 올랐다. 성삼재 출발 7시, 예보대로 비가 뚝뚝 떨어진다. 비옷과 우산을 챙겨 들고 노고단을 향했다. 8시, 노고단을 시작으로 25,5km의 대장정 종주 길에 올랐다. 짐의 무게는 약 30kg, 2박 3일 동안 먹거리를 장만하다 보니 보통이 아니었다. 그러나 다행이 하늘이 맑아지고 5월의 연녹색 잎과 아직 지지 않은 연분홍 철쭉이 가는 길목마다 기다리고 있다. ‘아이고 좋아라’를 외치며 걷는 지리산 종주, 나는 산을 오르기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이야기하고 나무와 풀과 꽃을 만나러 간다. 그래서 산을 오르면 마음이 싱싱해진다.

자연과 이야기하고 나무와 풀과 꽃을 만나러 간다
첫째 날, 성삼재-노고단-돼지평전-임걸령-삼도봉-화개재-토끼봉-연화천대피소, 12.1km다. 보통 1시간에 2km를 걷는다는데 오랜만에 종주 길에 오른 길손을 그냥 두지 않았다. 꽃을 만나고 자연과 이야기하며 사진을 찍다 보니 무려 12시간이 소요됐다. 연하천대피소에 늦게 도착해 전국에서 모인 산행객들과 밥을 나누고 숭늉을 나눠먹으며 소개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지리산은 1500고지가 넘는 능선 종주 길에 맑고 시원한 물이 흐른다. 임걸령, 선비샘, 천왕샘 등 예쁜 샘 이름 또한 정겹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갓 꺼낸 물보다 더 시원하고 물맛 또한 깨끗하다. 그래서 물은 많이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둘째 날, 연하천대피소-벽소령대피소-선비샘-칠선봉-영신봉-세석대피소 9.9km다. 장터목대피소는 예약이 완료된 상태라 세석대피소로 결정했다. 이것저것 챙겨 먹어서 조금 가뿐해졌지만 친구가 끙끙거리는 바람에 내 배낭은 다시 혼자서는 들지 못할 무게다. 바보 같은 산행이었다. 대피소에 햇반 등 먹거리를 파는데 그 많은 것을 다 짊어지고 가다니...필요한 것이 있으면 대피소에서 사는 것이 현명하다. 이게 바로 경험에서 얻어지는 교훈이다. 짐은 무겁지만 아름다운 경관을 마음껏 보고 즐기며 걷는 종주 길, 빨리 가지 않아도 되니 더없이 여유롭다. 세석평전에 도착해서는 아름다운 연분홍 철쭉에 반해 저녁을 짓기 전까지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세석평전에서 뛰어 놀았다.

셋째 날은 세석대피소(4시30분출발)-촛대봉(해돋이)-연하봉-장터목대피소(조식)-천왕봉-로터리대피소-칼바위-중산리 10.5km였다. 목조건물이며 깨끗하고 이국적으로 지어진 세석대피소의 하룻밤은 밤을 꼬박 세워도 좋았다. 엎치락뒤치락 거리다가 새벽 2시경 밖에 나갔다. 하늘에 총총이 박힌 별빛이 잡힐 듯 느껴졌고 까만 비로도에 다이아몬드가 박힌 옷감 같기도 했다. 그야말로 별빛이 쏱아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4시 30분, 여명이 밝지도 않았는데 해돋이를 보기 위해 준비하는 산악인들의 움직임으로 부산스러웠다. 세석대피소에서 촛대봉까지는 30~40분거리, 5시 15분, 천왕봉 옆으로 빨갛게 잘 익은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장관이었다. 날씨 변화가 심하고 운해가 끼기 때문에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봉 일출을 촛대봉에서 맞이했다. 천왕봉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은 세석대피소 촛대봉이다.

살아 백년 죽어 천년 고사목 장관
일출을 보고 3시간쯤 걸어 도착한 곳은 장터목대피소, 간단한 아침을 먹고 천왕봉을 향해 오르는 길은 고사목 지대다. 50년 전에 불법으로 벌목을 한 나뭇꾼들이 들킬까 염려 돼 벌목을 한 뒤 불을 지르는 바람에 지금의 고사목이 생겼으며 아직도 큰 나무는 없었다. 고사목은 살아서 백년 죽어서 천년을 지킨다는 이정표를 앞에 두고 서 있었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처량하던지... 
장터목에서 천왕봉까지는 2시간쯤 걸렸는데 세석에서 천왕봉까지의 능선들은 아름답고 환상적인 길이라 사진찍기 바빴다. 지리산 종주 길은 모든 능선이 아름답지만 그 중에 가장 머물고 싶었던 길이 세석대피소에서 장터목대피소를 지나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천왕봉에 오르니 종주 시작점인 노고단이 보인다. 아스라이 보이는 길을 한발한발 걸었다니 기적 같다. 로프에 매달리기도 하고 가파른 계단이 무서워 덜덜 떨기도 했으며 지리산의 자랑인 연분홍 철쭉에 달콤한 입맞춤하며 걸었다. ‘사랑하는 너를 만나고 싶어 먼 길 마다 않고 달려왔노라’천왕봉 비를 안아주며 다독다독, 15번째 천왕봉 비를 안으며 진한 만남을 기록했다.

들꽃들이 길목마다 반기는 어머니 젖줄 같은 지리산
온 몸과 다리가 지칠대로 지쳐 죽음이었던 1박 2일 종주 산행과는 달리 느긋한 마음으로 지리산 품에 안겼던 2박 3일, 지리산은 오를수록 매력이 있고 찾아갈 때마다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반기는 산이다. 그리고 어머니 젖줄 같은 지리산 종주는 대부분이 1500고지인 길을 걷지만 마치 평야 같은 느낌과 이름 모를 들꽃들이 길목마다 반기기 때문에 사람을 질리게 하지 않는 매력이 있다. 또 지리산은 비가 오다가 개는 날은 횡재하는 날이다. 운해가 대부분 그런 날 피어 오르기 때문에 고생이 환희로 바뀌는 순간이다. 그래서 피곤에 지쳐있으면서도 2천여장의 파노라마 같은 지리산 종주 사진을 보면 ‘다시 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든다. 이게 바로 지리산의 매력이다. 여기서 팁 하나, 지리산 종주는 대피소 예약은 필수, 숙소비는 1인당 8천원, 모포대여 2천원, 1명당 2장 필요, 예약자 신분증 지참할 것, 물은 가는 도중에 샘이 있으니 한 병 정도만 챙겨가고 가벼운 산행을 위해 먹거리도 대피소에서 구입하는 것이 현명하다.

조경심 기자  ge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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