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진 자리에 분홍빛 그리움만 남는구나!

단풍이 거의 다 졌다. 나무는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모든 잎을 스스로 떨구었다. 자연의 지혜다. 잎들이 떨어지지 않게 되면 나무는 겨울나기가 버거워진다. 그 많은 잎들이 양분을 섭취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연의 이치를 통해 삶의 지혜를 배워야 하는데도 그게 말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 보다 큰 사람이 되기 위해 자잘한 욕심을 버릴 줄 알아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다. 그래서 도중에 성장하다 만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하지만 나무들은 알고 있다.

내년 봄이 되면 다시 잎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화려하게 부활한다는 사실을. 지금 나는 무엇을 버리지 못해 망설이고 있는지, 한번쯤 나를 돌아보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사람은 반성을 통해 성장하는 법이다. 그래서 모든 글쓰기의 출발은 자기 고백에서 시작된다고 했던 것이다. 바스락거리는 낙엽소리를 들으면서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아래를 걷고 있는 여인들 모습이 진짜 아름답다.

흔들릴 땐 흔들리는 것, 그게 건강한 사람이다.

말은 다함이 있어도 뜻은 다함이 없다고 했다. 흔히 서부진언(書不盡言) 언부진의(言不盡意)라고 하는데 이는 주역 계사전에 나오는 말이다. 계사(繫辭)란 글을 ‘맨다’는 뜻이다. 아무리 말을 한다고 해도 그 말은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언어로 할 수 있는 게 생각보다 많지 않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해, 자기의 중심을 전달하는 데는 언어가 턱 없이 부족하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또는 정말 아름다운 풍경을 보았을 때, 그리고 억울한 일을 당해 호소를 할 땐, 언어의 나약함에 스스로 절망을 느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 때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게 된다. 눈물은 몸으로 보여주는 마지막 언어인 셈이다. 그래서 성인들은 종종 진짜 깨달음은 묵언(?言)에 있다고 했던 것이다. 물론 우리처럼 보편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많은 말을 하고 살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 해도 요즘 같은 계절에는 말보다 귀가 더 필요할 때다.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감상을 하다 보면 삶의 오묘한 이치를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당신의 마음이 건강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하나 있다. 바로 계절에 민감하게 반응 하는가, 그렇지 않은 가를 보면 된다. 계절 감각이 없는 사람은 감성이 죽은 것이고 죽은 감성에서는 어떤 휴머니즘도 나올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센티멘탈리즘에 젖으라는 소리는 아니다. 슬퍼할 땐 슬퍼하고 기뻐할 땐 기뻐하자는 말이다. 낙엽 밟는 소리에 당신 가슴이 반응을 하지 않거나 길거리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에 한 번쯤 발걸음을 멈추어 본 기억이 없다면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흔들릴 땐 흔들리는 것, 그게 건강한 사람이다. /사진 백억선 작가 /글 홍봉기 기자

홍봉기 기자 lovein29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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