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아직은 슬픔을 떠나보낼 때가 아니다. 슬픔도 충분히 발효가 되어야 떠나는 법이다. 설익은 슬픔은 오히려 더 큰 상처와 고통을 안겨줄 뿐이다. 세월호 참사 동안 필자의 가슴을 떠나지 않고 맴도는 글자가 있었으니, 바로 ‘슬플 비(悲)’자였다. 슬플 비(悲)자는 '아닐 非' 자에 '마음 心' 이라는 것 모르는 사람은 없을 터, 그랬다. 결코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는 바람에 우리는 원치도 않는 슬픔의 소나기를 맞아야만 했다. 원칙(原則)을 지켜야 하는데 그 원칙을 너무나 가볍게 여긴 대가를 또 한 번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아니, 대가치고는 너무나 가혹하다 하겠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전 국민이 트라우마에 걸렸으니 집단 치료가 필요하다며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전문가가 치료를 한다고 하더라도 상처가 스스로 떠날 때가지는 완치할 수가 없을 것이다. 트라우마는 ‘상처’를 뜻하며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라고 부른다. 이제 우리는 슬픔과 서서히 이별할 준비를 해야 한다. 히포크라테스 말처럼 자연이 가장 좋은 의사이듯이 자주 자연을 접하는 게 중요하다. 살다보면 누구나 원치 않는 일을 만나게 되는 법이지만, 중요한 것은 문제를 어떤 식으로 대처하는가 하는 점이다. 요즘처럼 슬픈 감정이 주기적으로 찾아드는 시기에는 일부러라도 자연을 가까이 하는 게 좋다. 

 

보리밭을 볼 때마다 보릿고개가 먼저 떠오른다. 그 고개는 모두가 넘어야할 수밖에 없었던 배고픔의 고개였다. 그리고 경제 성장과 더불어 우리는 하얀 쌀밥을 먹을 수 있었다. 배터지게 먹어보고 싶었던 하얀 쌀밥을 원 없이 먹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까지 했다. 쌀이 남아돌면서 주린 창자를 해결해 주었던 보리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멀어지고 말았지만, 가끔씩은 꽁보리밥에 물김치를 감아 맛있게 먹어보고 싶을 때가 있다. 흘러간 것들은 모두 아름다운 추억으로 편집된다는 데, 정말 그렇다는 데 동의하면서 가난한 시절의 보리밭을 카메라에 담았다. 

  

 세상에,

   홍봉기 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