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진씨와 그의 절친 강명기(CM-Tech 근무)씨를 만나기로 약속한 날은 생각보다 날씨가 따뜻했다. 우리는 가까운 근처 공원에 자리를 잡고 따스한 겨울 햇살을 받으며 이런저런 근황을 물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선진씨와 명기씨는 30년 가까이 우정을 쌓아오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둘도 없는 친구다. 명기씨는 하반신 마비로 거동이 불편한 선진씨를 지극정성으로 돌봐주고 있다. 선진씨가 95년도에 다쳤으니, 햇수로 20년이 넘는 세월을 그렇게 친구와 아름다운 동행을 이어온 셈이다. 기자는 무슨 이야기부터 먼저 꺼내면 좋을지 몰랐으나 일단은 사고를 당하게 된 경위부터 들어보기로 했다.

*하늘이 노랗게 보여

사고 전 선진씨는 해정산업(현재 메인테크)에서 해역장비를 맡아 수리하는 일을 했다. 그런데 벨트 위에 순간적으로 넘어지면서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고 한다. 선진씨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기가 곤혹스러운지 먼저 먼 하늘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친구의 그런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명기씨가 말을 이었다. “당시 이 친구가 하역장비 수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런 수리작업을 할 때는 전원을 일단 차단시키게 된다. 그래서 친구는 그런 줄 알고 벨트 위에 올라섰는데 하필 그 순간에 차단된 전원이 들어오는 바람에 이런 사고를 당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정말 한 순간에 일어난 사고라 미처 손쓸 여력이 없었다고 한다. 사고 당시 선진씨는 개구리처럼 납작 엎어진 채 벨트에 끌려가고 말았는데, 그 순간 하늘이 노랗고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 옆에 있던 동료가 나를 끄집어 내지 않았다면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라면 약간 자조 섞인 쓴 웃음을 지었다.

*3년까지가 제일 힘들어

선지씨는 사고를 당한 후, 수 없이 많은 밤을 절망과 원망으로 보냈다고 했다. 처음에는 도대체 자기에게 왜 이런 가혹한 일이 일어나야 했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더더욱 괴로웠다고. 그러나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않을수록 본인만 괴롭다는 사실을 알고 현실을 받아드리게 됐다고 한다. 현실을 받아들이기까지 무려 3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던 것이다. “사실 나처럼 멀쩡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걸을 수 없다고 생각해보라. 누구든지 견디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 3년쯤 되면 이것도 하나의 운명이려니 하고 받아들이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선진씨가 특히 안타깝게 여기는 문제가 하나있다. 바로 상담치료였다.”아직 우리 광양에는 그런 제도가 없는데, 사실 가장 고통 받는 것은 환자당사자만이 아니라 가족 구성 전체이기 때문에 함께 치료를 해 줘야한다.”면서 몇 번이고 강조했다. 그가 겪은 고충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딸은 내 삶의 기둥

그래도 선진씨는 딸보는 재미로 하루하루 희망을 가지고 산다며 좋아했다. “딸은 내게 있어서 삶의 존재이유이며 또한 내 삶의 기둥이다. 내가 사고를 당해 딸이 이제 겨우 100일 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 아빠가 걷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해 그저 미안할 따름” 이라고 말하는 선진씨 역시 딸바보였다. 그런데 선진씨 딸이 광양지역에서 유명한 인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고등학교 재학시절에 이미 자산관리공사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스카우트)했기 때문이다. 이는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당시 매스컴에서도 많이 보도가 되었다. “딸은 일찍 철이 들었다. 아빠가 건강한 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스스로 그렇게 공부를 해 좋은 결과를 얻었을 것이다. 그런 딸이 얼마나 대견한지 모른다.”며 선진씨는 모처럼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친구야 둥글게 살자

“잘 생각하면 나는 덤으로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늘 자기 운명을 받아들일 줄 알고 또 자기 복의 분량만큼 살아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괴롬이 시작되는 법이다” 선진씨는 친구를 보면서 하루하루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뿐만 아니라 즐겁게 살아가자고 요청했다. 선진씨와가장 많이 동행하는 명기씨는 ”기쁘고 보람되데 사는 게 최고 인생 아니겠냐”며” 화답했다. 명기씨는 선진씨와 고등학교 때부터 둘도 없는 단짝친구였다. 명기씨는 ”솔직히 친구 다리만 조금 불편할 뿐이지 우리들 우정은 전혀 불편하지 않다”며” 날씨가 풀리면 또 섬진강에 가서 낚시도 하고 가까운 관광지를 찾아다니자고 약속했다. 지금은 눈짓만 봐도 뭘 요구하는지 바로 안다는 두 친구는 현대판 백이숙제임에는 틀림없어 보였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 데 어디선가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것을 느꼈다. 그 냄새는 바로 단단하기가 황금(黃金)과 같고 아름답기가 난초(蘭草) 향기(香氣)와 같다는 금란지교(金蘭之交)의 냄새였다.

홍봉기 기자  lovein29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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