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곤 생각보다 많이 내렸다. 아무래도 올겨울은 유난히 길어진다는데, 겨울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눈이 많이 내린 것을 보니 그 말이 틀림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여류시인은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고 썼다는데, 어디  이 여류 시인만 그럴까? 우리는 모두 그런 꿈을 꾼 적이 있었던 공모자들이 아닌가.

아니, 유명한 영화 러브스토리를 떠올리며 주인공 올리버와 제니가 되어 눈밭을 뒹굴고 싶었던 충동은 또 어쩌고. 그러나 현실과 영화는 엄연히 다른 법, 일단 자동차 사고부터 걱정을 하게 되는 게 인지상정. 백 작가는 눈 내리는 창밖을 보면서 불현듯 카메라를 챙겨들었다. 직감적으로 담양 메타세콰이어 길이 떠올랐던 것이다. 모든 길은 그리움으로 통하게 마련, 사진은 길을 찾아 떠나는 발의 예술인 셈이다.

도로 사정이 조금은 걱정이 되었지만 아름다운 순간을 위해서라면 이까짓 빙판길이 무슨 대수겠는가. 그러나  도로는 생각보다 훨씬 미끄러웠고 핸들 역시 몇 번이고 휘청거렸다. 이처럼 어렵게 찾은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본능처럼 카메라 렌즈를 조절하고 셔터를 눌러대기 시작했다.

 하얀 순백의 세상은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의 경계를 허물어뜨리고 있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과 그 누구도 인화할 수 없는 설경 앞에 스스로  전율하며 셔터를 누르고 또 눌렀다. 그러던 중 불현듯 오래전에 보았던 ‘러브레터’ 라는 일본 영화가 기억의 문을 밀치며 눈(雪) 앞에 나타났다.

여주인공 히로코가 “오겡끼데스까(잘 지내시나요)”를 외치던 그 설원이 오버랩 되면서 무아지경 속으로 빠져들었다. 언어는 사라지고 오직 셔터소리와 환상만 남았다. 사진/ 백억선 작가  글/홍봉기 기자 

홍봉기 기자  lovein29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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