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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빙하시대 2
  • 홍봉기 기자
  • 승인 2012.04.04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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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빙하시대 2 詩 허연

자리를 털고 일어나던 날 그 병과 헤어질 수 없다는 걸 알았다.
한번 앓았던 병은 집요한 이념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병의 한가운데 있을 때 차라리 행복했다. 말 한마디가 힘겹고,
돌아눕는 것이 힘겨울 때 그때 난 파란색이었다.
혼자 술을 먹는 사람들을 이해할 나이가 됐다.
그들의 식도를 내려갈 비굴함과 설움이,
유행가 한 자락이 우주에서도 다 통할 것 같이 보인다.
만인의 평등과 만인의 행복이 베란다 홈통에서 쏟아지는
물소리만큼이나 출처불명이라는 것까지 안다.
내 나이에 이젠 모든 죄가 다 어울린다는 것도 안다.
업무상 배임, 공금횡령, 변호사법 위반, 뭘 갖다 붙여도 다 어울린다.
때묻은 나이다. 죄와 어울리는 나이. 나와 내 친구들은 이제 죄와 잘 어울린다.
안된 일이지만 청춘은 갔다.

희망은 늘 미래시제로 오는 법이다
이 시가 가슴에 꽂힌 날, 하필이면 봄비까지 세차게 쏟아져 내렸다. 비 내리는 날, 유리창 밖의 세상은 더 아름답게 보이는 법이지만, 슬픈 빙하기를 보내고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고통일 뿐이다. 빗방울은 자꾸만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들어오려고 끝없이 달라붙어보지만 헛수고다. 투명한 것들이란 때때로 보이지 않는 장벽이 되는 법, 나 역시 종종 그런 유리창이 될 때가 있다.

누군가 쉽게 내게 접근을 했다가 보이지 않는 유리막 때문에 상처를 입고 돌아가기도 했다. 비는 아스팔트 위로 끝없이 부서져 내렸고, 질주하는 차량들은 거침없이 빗물을 튕기며 지나갔다. 그래, 시인의 말처럼 내 나이쯤에는 모든 죄가 다 잘 어울리는 법이다. 가족을 건사해야 한다는 목적 때문에 하얀 거짓말도 해야 했고, 내 집단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해 억지 논리를 펼칠 때도 있었다.

삶은 생각만큼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으며, 원하는 일보다 원치 않는 일이 더 많이 일어났다. 사람들 역시 시시때때로 문자를 날리고 전화를 주고받지만 외로움은 더 커진다고 하소연이다. 하긴, 마음을 보여주지 못하는 관계가 얼마나 오래 가겠는가. 당신과 나 역시 안 된 일이지만 청춘은 이미 갔거나 또 가고 있을 것이다. 삶은 금치산자와 같으며 희망은 부도난 수표에 다름이 아니다.

지금도 세상 곳곳에는 출처불명의 탄식들만 떠다니며 사람의 마음을 힘들게 하고 있다. 빙하기가 지나고 간빙기가 오기까지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구원은 늘 미래시제로 오는 법이니까.

홍봉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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