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수 하늘씨앗교회목사

내 마음의 지성소 지리산
내가 살고 있는 구례읍 지리산파크 아파트는 거실 한 면 전체를 차지한 큰 창문이 동북향을 향하고 있어서, 지리산 노고단 전경이 창문에 가득 안겨 아름다운 화폭처럼 눈에 들어온다.

사실은 이 맛에 구례 읍내에 있는 아파트들 가운데서도 굳이 지리산 파크아파트를 선택해서 25년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전라남도 구례로 돌아온 것이 나의 철없는 속 마음이었다. 아침저녁 장엄하게 서 있는 노고단을 보고 있노라면, 계절마다 산허리를 감고 피어오르는 안개와 구름들이 시시각각 연출하는 천변만화의 장관에 나는 온통 황홀해지다 못해 종교적인 경지에 이르는 순간들을 경험하곤 한다. 이런 행복이 내 늦은 인생에 찾아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평생에 무슨 큰 덕을 베푼 기억도 없는데, 이런 행운을 만난 것은 온전히 하느님의 은총이려니 여기며 감사한 마음으로 구례에서 살고 있다. 이렇게 구례에서 살아온 지난 2년 동안, 지리산 종주를 3번 했고(결코 적은 횟수가 아님), 화엄계곡을 따라 노고단을 오르는 7km 산행은 적어도 열 번은 넘게 했는데도 그 때마다 지리산은 내 마음을 설레게 하는 새색시처럼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광양 매화축제를 기다리며
어디 지리산 뿐일까. 광양 매화는 노년에 잠들어 가던 내 마음을 화들짝 깨어나게 만드는 마술을 보여주었다. 생에 처음으로 그처럼 많은 매화를 접한 나는 절로 감탄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도 있다니!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연신 감탄사만 연발하였던 작년 봄이 생각난다. 아니, 굽이굽이 흘러가는 섬진강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이었던지, 작년 일을 생각만 해도 마음이 들썩거리는 것을 느낀다.

사실, 광양매화 축제는 이 지역만을 대표하는 축제가 아니라 남도를 대표하는 축제가 되었다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이제 우수도 지났고, 양지바른 곳에 있는 매화는 벌써 실눈을 뜨고 있다고 하니, 3월 초에 또 한번 내 마음은 활짝 개안을 할 것 같다.
이렇게 아름다운 남도 땅을 보면 ‘이런 것을 일러 노년의 행복이라고 했구나’ 하는 생각에 절로 흥이 난다.

자연은 몸과 맘을 치료하는 의사다
세상이 점점 삭막해지는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자연을 등지고 오로지 첨단 과학에만 매달려 살기 때문이다. 핸드폰을 이용해 수시로 문자를 날리고 시도 때도 없이 검퓨터에 접속해야 하며 그리고 쉬지 않고 음악을 듣는다.

한순간도 홀로 있지 못하는 것이 현대인들의 특징이다. 하지만 사람이 성숙해지는 과정에는 반드시 자연 속에서 홀로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쩌면 현대인들이 앓고 있는 모든 정신질환은 자연을 떠난 당연한 결과인지 모른다. 물론, 우리는 수도를 닦는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틈틈이 자연을 찾고 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둘러 볼 때 마음속을 정화할 수 있다. 자연은 단순히 심미적인 아름다운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육신의 병까지 치료해 주는 의사 역할을 해준다.

다만, 이처럼 엄청난 혜택을 돌려 주는 자연을 너무 훼손하거나 함부로 대하는 모습을 보면 그저 가슴이 아프다. 어쨌건 매화축제가 빨리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매화가 눈 뜨는 그 순간, 봄도 비로소 깨어나게 될 것이다.

결국, 우리 모두는 자연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을 명심하고 자연 앞에 더욱더 감사하며 소중한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자,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들어보라. 봄이 오는 발자국소리가 들려 올 것이다.
나의 피엔 금이 잔뜩 가서/한자루 뼈끝에 태어나는/꽃이여/꽃이여 김승희시를 읊조려 본다.

데스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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